"경직된 거래소, 유연하게…3년 임기 가장 큰 성과"[만났습니다]①

by김인경 기자
2023.09.21 06:00:00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인터뷰
엘리트관료, 거래소 온 후 수직적 조직문화부터 손대
내부 블라인드 ‘온통’으로 소통 확대
올해 12월 임기 만료…“쓰임이 있다면 쓰일 것”

[이데일리 대담=함정선 부장·정리=김인경 기자] “거래소에 와서 보니 공직사회만큼이나 경직돼 있더군요. 시장을 위한 조직인데 관처럼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3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로 ‘조직 문화의 변화’를 손꼽는다. 최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손 이사장은 “지난 3년간 거래소를 기민하고 유연한 조직으로 만들려 노력했고,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연수 등으로 거래소를 떠났던 직원들이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얘기가 조직이 바뀌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이 사장이 중소기업을 위해 마련한 회계지원센터와 중소·중견기업 투자를 위해 한국IR협의회와 손잡고 만든 리서치센터 등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음에도 그가 스스로 가장 큰 성과로 조직 문화를 떠올린 것은 이를 통해 거래소 직원들이 보다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하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거래소의 역할을 고려할 때, 직원들의 변화가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손 이사장은 “직원들이 열정적으로 바뀌었고, 그게 힘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사진=김태형 기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를 거친 엘리트 관료. 공직에만 30년 몸담은 관료 그 자체인 손 이사장은 그러나 “익숙하지만 공적인 업무가 힘들다”고 했다. 공직을 누구보다 잘 알다 보니 조직에서 바꿔야 할 점이 더 잘 보였다. 보수적이고 수직화한 조직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손 이사장은 우선 제도와 형식부터 손댔다.

익명 게시판 ‘온통’을 만들어 불합리한 것에 대해 직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했고, 클라우드를 도입하며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 실제로 인사발령이 나면 컴퓨터를 카트에 담아 이동하는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손 이사장은 “초반에는 조직 구성원이 화가 많이 나 있더라”라며 “익명 게시판을 통해 건의를 듣고,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보여주자 직원들도 변화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그는 거래소의 수많은 업무를 ‘위키백과’식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주목하고 있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인수인계를 보다 빠르고 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3개월 후면 거래소를 떠나는 손 이사장의 눈에는 아직도 거래소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보인다. 자본시장에서 알아서 탄생한 다른 나라의 거래소와 달리 한국거래소는 민간기업의 역할뿐만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할 공적 역할도 어느 정도 맡고 있어서다.

손 이사장은 “성격상으로는 분명 정부 지분이 없는 주식회사지만 이상 거래를 파악하고 시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규제기관의 성격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그는 거래소가 ‘균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장을 지원하는 민간 기업으로서 역할과 규제 기관으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특성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연초부터 차익거래결제(CFD) 사고가 터졌고 이어 테마주 장세가 이어지며 검찰이나 금융감독원과의 공조가 많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손 이사장은 “직원들로선 국제적 경쟁력을 강조하면서도 규제 하부기관 업무를 해야 하는 만큼 정체성의 혼란이 매일 올 것”이라며 “멀티태스킹을 하며 균형을 잘 잡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 과제 역시 남아 있다. 그는 “작년 말부터 정말 열심히 준비했지만 변화를 체감하기는 이른 시기”라면서도 “주주 행동주의도 예전보다 늘어나지 않았나. 한 술밥에 배부를 수 없듯이 조금씩 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손 이사장은 지난 3년간 본사가 이전한 부산에도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주일의 3일은 서울에, 2일은 부산에 머물며 지역을 살피면서다.

손 이사장은 “부산에 기여할 수 있는 만큼 한다”라며 “더 많이 하고 싶지만, 거래소로서는 회원사나 고객들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의 본사가 부산으로 이전한 것도 18년이 됐지만 정작 지역에서는 ‘제대로 이전한 것이 아니다’라는 불만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에 손 이사장은 거래소가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의 거점을 부산에 두는 방법으로 민심을 얻었다. 청산결제본부가 부산에서 출범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실화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아이디어도 추진했다. 부산에 금융공기업들과 함께 자립형 사립고 설립을 추진해 직원들의 정주 여건을 높이려는 시도 등이다.

손 이사장은 “재원 조달 등에 한계가 있어 끝내 무산됐다”며 “직원들의 정주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자녀 교육 부분인 만큼, 아쉬운 일”이라고 밝혔다.

손 이사장의 지역에서 적극적인 행보 덕분에 민심도 많이 바뀌었다. 그는 “물론 예전에는 부산에서도 거래소에 대해 의심을 하고 그랬지만, 이제 인정해 주는 부분이 있다”면서 “물론 성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은 있겠지만 노이즈(잡음)는 줄어든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민과 관을 오가며 활약을 벌인 만큼, 한편에서는 부산에서 그가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손 이사장은 “민간에서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라면서도 “무엇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쓰일 곳이 있다면 기꺼이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1964년생 △서울 인창고,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미국 브라운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학위 △행정고시 33회 △2008년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 △2010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장 △2011년 G20기획조정단장 △2015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2016~2017년 금융위 상임위원 △2017~2019년 금융위 사무처장 △2019~2020년 금융위 부위원장 △2020년 12월~ 한국거래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