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집단 자처한 국방부…홍범도 논란에 퇴보한 국군 뿌리찾기[김관용의 軍界一學]

by김관용 기자
2023.09.02 09:00:00

文정부, 육사에 독립전쟁 영웅 흉상 설치
독립군·광복군 등 국군 뿌리 찾기 일환
홍범도 장군 흉상, 공산주의 이력 탓에 ''수난''
굳이 국방부가 나서 영웅 ''사상 검증''해야 했나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인데,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하는 그런 문제가 제기되어서 시작됐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 달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내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해 한 말입니다.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것으로 알려진 홍범도 장군을 겨냥한 발언입니다.

육사는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18년 생도들의 교육 장소인 충무관 정문에 독립전쟁 영웅인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인 이회영 선생 흉상을 세웠습니다. 또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당하자 분개해 권총으로 자결한 박승환 참령 흉상도 충무관 1층 로비에 설치했습니다.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 정문 모습 (사진=연합뉴스)
육사가 이들의 흉상을 설치해 기린 것은 국군의 뿌리를 광복 이전으로까지 확장해 찾자는 정권 차원의 결정 때문입니다. 당시 국군의 뿌리 찾기는 1896년 고종 재임 시절 대한제국이 만든 ‘육군무관학교’라는 군 장교 양성기관에 주목했습니다. 육군무관학교는 설립 직후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며 유야무야 되는듯 했지만, 1898년 다시 설립돼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으로 학교가 쇠퇴할 때까지 무관 양성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김좌진 장군과 광복군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 이장녕 대한독립군단 참모총장, 신규식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등이 모두 육군무관학교 출신입니다. 특히 육군무관학교 출신들이 신흥무관학교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만들었고, 신흥무관학교 출신 인사들과 교관들이 독립군과 광복군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들이 광복 이후 대한민국 국군 건군 과정에서 활약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육사는 그 이전까지 이같은 역사 찾기에 소극적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면서 ‘친일’ 인사가 육군의 요직을 차지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만주군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했던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참모총장까지 역임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해방 이전에 일본군 장교 출신입니다.

게다가 12.12 사태로 탄생한 신군부는 독립군과 광복군 출신 인사들 중 북한 주요 인물들이 포함돼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육사가 광복 이후 1946년 5월 1일 개교한 국방경비대사관학교를 모체로 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지난 2018년 3월 1일 육군사관학교 충무관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에 문재인 정부는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전통을 육사 교과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시키도록 지시했습니다. 이후 육사 생도들은 독립군 및 광복군에서 대한민국 국군으로 계승된 인적·정신적 연계성과 독립전쟁사 중심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통필수’ 과목이었던 6.25전쟁사와 군사전략, 북한 과목 등이 ‘전공필수’로 변경됐습니다. 공통필수 과정은 모든 생도가 수강해야 하나 전공필수 과정은 관련 전공자만 선택, 수강합니다. 이같은 안보관·역사관·대적관 관련 과목 축소로 교육 편향성 문제가 지적됐고, 윤석열 정부 이후 내년부터 다시 3개 교과목이 공통필수 과목으로 부활합니다.



육사는 그간 예비역들과 정치권, 보수 단체 등으로부터 생도들이 매일같이 드나드는 교육 장소에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만을 설치한 것에 대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 때문에 생도 교육 자체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정 시기의 영웅들 흉상을 두는 것 보다 충무관 건물 전체(지하~4층) 복도와 로비 등에 고대에서 현대까지 국난극복의 역사 전체를 학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을 검토한 것입니다. 고대~조선, 독립군, 광복군, 6.25전쟁, 베트남 파병, 국지도발대응작전, 해외파병 등 모든 역사가 포함될 예정입니다. 조형물 이전·재배치 사업이 진행된 배경입니다.

육사 교내에는 총 41개의 기념시설 및 기념물이 있습니다. 이중 인물상은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 박승환 참령의 흉상 외에 △수류탄 훈련 중 부하가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안고 산화한 강재구 소령 동상 △6.25전쟁 참전 생도상 △육사 개교에 기여한 미 8군 사령관 벤플리트 장군 동상 △6.25전쟁 영웅인 심일 소령 동상 △안중근 장군 동상 정도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인물상이 특정시기에 몰려 있기는 합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는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만 철거하고 국방부 내 흉상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이같은 육사 조형물 이전·재배치 사업이 이념 논쟁화 됐다는 것입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공산주의 경력’ 발언은 여기에 불을 지핀 꼴이 됐습니다. 이 장관 발언 이후 국방부는 공식 입장을 통해 그의 공산주의 활동 경력을 조목조목 설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련 공산당 가입은 일제에 저항할 힘을 빌리기 위한 선택이었다는게 정설입니다. 자유시에서 무장해제를 거부한 독립군이 공격당한 ‘자유시 참변 사태’에 홍범도 장군이 관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없습니다. 게다가 1943년에 별세했기 때문에 김일성의 북한 정권에 직접 가담하거나 동조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에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해 박정희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홍범도 장군에게 추서했고, 김영삼 정부부터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던 그의 유해 봉환을 추진했습니다. 국방부 스스로도 5년 전 만든 ‘10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 인생 풀스토리’ 영상물에서 홍범도 장군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며 ‘가슴 아픈 오해’라고 강조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상은 지난 1일 비공개 처리돼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우파였던 것은 아닙니다. 좌익 계열 독립 투사들도 많았고 이들은 서로 생각이 달랐을 뿐 조국 독립의 일념으로 일제에 맞섰습니다. 그런데도 광복 이후 반공 이념의 잣대로 이전 독립운동 영웅의 사상에 칼을 대고 활동상을 문제 삼는게 타당한지 의문입니다.

국군과 육사의 뿌리를 독립군·광복군과 나아가 군대 해산에 항거한 대한제국군까지 거슬러 올라가려 했던 그간의 노력이 무색해 지는 모양새입니다. 북한은 있지도 않았던 ‘조선인민혁명군’을 김일성이 1930년에 창설해 항일무장투쟁을 했다며, 이를 조선인민군의 뿌리로 삼고 있습니다. 북한은 없던 역사도 갖다붙이는데, 우리는 있던 사실에도 소극적입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방부가 왜 굳이 나서서 홍범도 장군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공산주의자’ 운운하지 말고, 육사가 처음 설명했던 것처럼 흉상 위치의 적절성과 국난극복의 역사가 특정시기에 국한되는 문제를 고려해 여러 조형·기념물을 이전·재배치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면 좋았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