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선 박사의 쉼터] 나의 가족 경계선은 건강한가?
by이순용 기자
2022.07.18 06:49:32
[김미선 상담학 박사] 인간 사회는 커다란 체계(system) 속에서 움직인다. 우리가 속해 있는 가족도 체계가 있고 다른 체계와 마찬가지로 그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존재한다. 그 경계선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 유형과 외부 사회체계와의 관계 유형이 형성된다. 이러한 가족 경계선은 가족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정한 ‘가족 규칙’에 의해 정해지는데, 경계선의 성격에 따라 다음의 3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첫 번째, 가족들 간에 경계가 분명하게 설정되지 않은 ‘혼란한 경계선(diffused boundary)’이다. ‘가족은 늘 함께하고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는 가족 규칙이 주입된 이들은 매사에 서로 간섭하고 개입한다. 언뜻 보면 가족 간 매우 높은 수준의 친밀감과 상호지지를 보이는 것 같지만, 서로 지나치게 밀착되어 독립된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가족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도 다 같이 의견을 내고 눈치 보며 신경을 쓰다 보니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서로에게 지나치게 민감하므로 개인의 자율성을 해치고, 효율적으로 관계하지 못한다. “너는 가족을 떠나서는 살 수 없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통해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을 제한하는 한편, 가족 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가 힘들어 속박된 관계(enmeshed relationships)를 초래한다.
두 번째, 과도하게 엄격한 가족 분위기로 인해 각자 격리돼 있는듯한 ‘경직된 경계선(rigid boundary)’이다. 가족 간 대화가 없으므로 가정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하기 어렵다. 냉랭한 가정 분위기 탓에 “인생길은 결국 혼자 가는 거야”라고 스스로 체득한 이들은 서로 무관심하여 애정 표현과 상호지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내내 방관자로 일관하다가, ‘자녀 가출’처럼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맞닥뜨려야만 비로소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고립된 이들은 외로움을 친구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가족 간 접촉을 거의 시도하지 않는 유리된 관계(disengaged relationships) 속에 서로가 점점 낯선 타인처럼 멀어지고 서먹해진다.
세 번째, 서로에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여하는 ‘분명한 경계선(clear boundary)’을 가진 건강한 가족이다. 남편과 아내의 평등한 관계, 형제간의 동등한 관계, 부모 자녀의 세대 경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존중하며 지지한다. 이들은 갈등이 생기면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모두에게 유익한 타협점을 찾아가고 부모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녀가 독립된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분명한 경계선’을 지닌 가족은 가족 간의 통합이나 가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외부 체계와의 상호작용에 우호적이다.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때는 함께 힘을 합하여 지원하지만, 각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사적 공간을 침범하지는 않는다. 모두 힘을 모아 뭉칠 때와 각자 적절히 떨어져 성장할 때의 균형을 이루어 개인의 성장과 가족의 안정을 유지한다.
내 가족 경계선은 건강한가. 먼저 자신이 속한 가족의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 들여다보자. 혹여 속박된 가족 관계 또는 유리된 가족 관계는 아닌지, 그 안에 있을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비틀린 가족 경계선을 인식해야 한다. 익숙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무의식에 각인된 비합리적인 신념(예: “나는 가족을 떠나서는 살 수 없어.”)을 찾아내어 합리적인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지나친 불안 또는 극도의 소외감과 같은 심리적 증상을 보인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역기능 체계를 반영하는 현상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체계의 구조 변화를 통해서만 개인의 치료도 가능해진다. 분명한 가족 경계선을 지닌 건강한 가족 관계를 유지할 때 가족 구성원 모두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건강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