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언·소설가 최은영 ‘대산문학상’ 수상…"내 속도로 꾸준히 글 쓸 것"

by김은비 기자
2021.11.04 05:20:00

시·소설·희극·번역 부문
부문별 5천만원…총 2억 원 시상
오는 29일 시상식 개최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지난 2년간 어떻게 시를 써야할지 막막했던 시간이었는데, 이번 상을 계기로 조금 더 여유롭게 찬찬히 글을 써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시인 김언)

“대학생 대산대학문학상을 위해 원고를 들고 대산문화재단을 찾은 게 엊그제 같은데, 10여년 만에 의미있는 상을 받게 돼 뭉클 한 마음입니다.”(소설가 최은영)

제29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김언 시인(왼쪽부터), 소설가 최은영, 차근호 작가(사진=대산문화재단)
김언 시인의 ‘백지에게’와 소설가 최은영의 ‘밝은 밤’이 제 29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은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수상자와 수상작을 발표했다. 희곡 분야에는 차근호 ‘타자기 치는 남자’가, 번역 부문에는 김혜순 시인의 시집 ‘죽음의 자서전’을 영어로 번역한 최돈미 번역가가 선정됐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 상금 5000만원과 함께 양화선 조각가의 청동 조각 상패 ‘소나무’가 수여된다.

‘백지에게’는 김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이다. 홀로 백지 앞에 앉아 나지막이 읊조리듯 전하는 시인의 일상과 진솔한 고백이 짙게 담겨 있다. 심사위원단은 “‘쓰다’라는 자의식 아래 슬픔과 죽음을 넘어서는 아스라한 목소리를 김언 스타일로 단단하게 들려줬다”고 평가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김 시인은 “지난 2년간 이번 시집을 쓰면서 한계에 봉착한 기분이 들었다”며 “시집 제목을 정하면서 지금껏 계속 써오던 방식을 다 내려놓고 ‘백지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시집을 출간하던 시기를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지치지 않고 계속 써나가라고 독려하는 의미에서 상을 준 것 같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밝은 밤’은 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주인공 지연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떠난 지방 작은 도시 ‘희령’에서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할머니와 재회하며 들은 이야기를 담았다. 할머니의 입을 통해 들은 증조모부터 지연의 이야기까지 100년에 걸친 여성 4대의 삶이 나온다. 책은 심사위원단에게 여성 4대의 일대기를 통해 공적 영역에서 배제돼 온 여성의 역사가 장대하게 재현되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 작가는 “데뷔한 지 8년이지만 생각만큼 많은 작품을 쓰지도 못했고 머뭇거리고 주저했던 시간이 많아 빨리 써야지 하는 생각도 많았다”며 “이제는 그런 생각을 좀 내려놓고 내 속도에 맞춰 조금씩 쓸 수 있는 걸 쓰겠다”고 말했다.

희곡 ‘타자기 치는 남자’는 일상적 언어를 통해 억압과 권력의 폐해를 보여주고 그 피해자의 영혼을 독자와 관객들에게 환기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차근호 작가는 “대산문학상은 극작가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상”이라며 “희곡은 특성상 문학 장르이면서 동시에 연극 요소여서 극작가들은 가끔 자기 정체성을 의심하는데 이 상은 극작가가 문학인이라는 걸 일깨줬다”며 남다른 소감을 전했다.

독일에 거주 중으로 이날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한 최돈미 번역가는 재단을 통해 “1980년대 군사 독재 치하에서 한국 여성 시인들의 시가 어떤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에 한국 현대 여성시를 번역하기 시작했다”며 “‘죽음의 자서전’은 김혜순 시인의 가장 강렬하고 실험적인 시집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산문학상 번역상을 수상하게 돼 큰 영광”이라고 전했다. 최돈미 시인이 번역한 ‘죽음의 자서전’은 미국에서 저명한 독립 출판사 ‘뉴 다이렉션’(new direction)에서 출간돼 한국 현대시의 우수성을 알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한편 대산문학상은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의 뜻에 따라 교보생명이 1992년 출연해 설립한 대산문화재단이 수여하는 문학상이다. 시와 소설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 동안 단행본으로 출판된 작품을 대상으로 했다. 희곡과 평론 부문은 격년제 심사를 시행, 올해는 희곡 부문을 심사했다.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번역물을 대상으로 하는 번역 부문은 올해 4년 만에 영어로 번역된 한국문학 작품을 심사대상으로 했다. 시상식은 오는 29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교보컨벤션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