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수적인 '큰손' 연기금…여전채는 관심無

by박정수 기자
2020.06.24 00:13:00

[코로나19 크레딧전문가설문](下)
코로나19 여파 대체로 비슷한 평가
시장 참여자보다 투자 전략은 ''보수적''
"투자 가능 기업있지만 비중 확대 어려워"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연기금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금융시장 타격에 대해 시장 참여자들과 대체로 비슷한 평가를 하면서도 보다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다. 안정적 운용을 지향하는 연기금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여파가 국내보다는 해외가 컸다고 평가하면서 시장충격의 근본적 원인도 대외 의존적인 국내 산업구조로 꼽았다. 정부 정책에 대해선 규모의 적절성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시장 참여자들과의 소통에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23일 이데일리가 진행한 코로나19 관련 크레딧전문가설문 결과 연기금·공제회 소속 19명 가운데 13명(68.4%)은 A급 이하의 크레딧물 중 업종·기업별 투자 가능 기업은 있으나 비중 확대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설문응답자 전체로 보면 같은 질문에 총 164명 가운데 97명이 응답, 59.1%의 비중과 비교하면 연기금 담당자들이 10%포인트 가량 높다. 시장에서는 연기금이 A급 크레딧물을 사야 한다고 지속해서 요구하지만 연기금 측에서는 확대가 어렵다는 얘기다.

한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연기금들의 A급 회사채 투자가 제한적인 데다 절대금리 수준도 맞지 않다”며 “공제회의 경우 지속해서 요구 수익률은 높아지는 데다 적립급여 급여율(이율)을 고려하면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신종자본증권 등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교직원공제회의 경우 장기저축급여 급여금은 3.74%(연복리)가 적용된다. 이외에도 행정공제회, 군인공제회, 경찰공제회 등도 적립급여 급여율(이율)이 3.5% 안팎의 수준이다.

이에 연기금 소속 응답자 가운데 10명(52.6%)이 하반기 크레딧물 투자 계획에 대해 ‘현행 유지’로 답했다. 특히나 크레딧 비중 변경(확대 또는 축소)을 검토한다면 그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 10% 이내에 대한 답이 15명으로 78.9%에 달한다. 10% 이내에 대한 답한 설문응답자 전체(86명, 52.4%)와 비교하면 25%포인트 이상 높다.

크레딧 등급별 비중확대만 봐도 AAA급과 AA급이 각각 7명으로 36.8% 비중을 기록했으나 A급은 4명으로 21.1%에 그쳤다. 크레딧 섹터별 비중확대를 보면 회사채가 8명(42.1%)으로 가장 많은데 결국 AA급 이상의 회사채에 투자를 늘리겠다는 얘기다.

실제 최근엔 국민연금이 채안펀드가 들어가는 AA급 회사채 투자에 나서면서 일부 민간평균 금리보다 낮은 금리에 발행이 이뤄지고 있다. 민평대비 높은 금리를 써내는 채안펀드가 물량을 배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또 캐피탈채, 카드채는 비중확대 응답이 0으로 관심 밖이었으며 공사채 비중 확대에 7명(36.8%)이 답해 회사채 뒤를 이었다. 한 연기금 CIO는 “과거 카드사태 등을 통해 곤욕을 치렀던 경험이 있어서 여전채엔 아예 투자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며 “안정적인 공사채 장기물에 눈을 돌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연기금들은 회사채 가운데 2단계 이상 등급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에 두산중공업(034020)을 가장 많이 꼽았다. 시장 전체로는 대한항공과 두산중공업이 공동 1위였지만, 연기금은 두산중공업에 더 많은 표를 줬다.

연기금·공제회 소속 19명 가운데 47.4%(9명)가 두산중공업(BBB↓)이 지난 3월 이후 내년 말까지 2단계 이상 등급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두산중공업은 투기등급으로 전락한다.

이어 대한항공(003490)(BBB+↓)이 31.6%(6명)가 선택해 뒤를 이었으며 LG디스플레이(A+ N/S), CJ CGV (A N/A+↓), 두산인프라코어(BBB), 메가박스중앙(A- N) 등이 각각 15.8%(3명)씩 택했다.

등급이 적정하지 않은 기업(워스트레이팅)에는 대한항공을 52.6%(10명)가 하향 조정을 선택해 가장 많았다. 이어 LG디스플레이가 42.1%(8명), 두산중공업이 31.6%(6명), CJ CGV 21.1%(4명) 순이다. 연기금 또한 시장 참여자들과 같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 영화관 관련 기업을 상위권에 올려뒀다.

반면 BBB급으로 추락한 현대로템(064350)의 경우 10.5%(2명)가 등급이 적정하지 않아 하향 조정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나 15.8%(3명)는 오히려 등급 상향 조정을 택했다.

현대로템의 경우 지난 4월에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기존의 ‘A-’에서 ‘BBB+’(안정적)로 하향 조정된 바 있다. 등급 조정은 주력사업인 철도부문의 수익창출력 저하 등 전반적인 사업안정성 저하와 대규모 영업손실 반복에 따른 재무안정성 악화가 이유다.

한 연기금 CIO는 “하반기 크레딧 시장이 전반적으로 옥석가리기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