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 빠진 뮤지컬 봤어?…우리도 숨은 주인공"

by장병호 기자
2018.08.02 06:00:00

'브로드웨이 42번가' 앙상블 김영호-유낙원
탭댄스 열연 등 전회 역할 소화하며 꿈 펼쳐
낮은 출연료 등 처우 열악하지만 포기 안해
유 "먼훗날 미스사이공 주인공 기대하세요"
김 "뮤지컬 샛별들 울타리·조력자 되고파"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앙상블 배우 김영호(오른쪽), 유낙원은 “앙상블이라고 하면 힘들다는 이미지가 고착화돼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게 앙상블을 더 힘들게 만든다”며 “다재다능한 앙상블을 힘들게만 보지 않고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사진=노진환 기자 shdmf@).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 “넌 내가 무대 위에 세워놓은 먼지 한 점에 불과해.”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한 장면. 프로듀서 줄리안 마쉬의 독설에 신출내기 코러스 페기 소여가 밝은 미소로 맞받아친다. “하지만 그런 먼지들이 모여 아름다운 무대로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주잖아요.” 무대 위에서는 누구나 빛나는 별이다.

대작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여름 공연계에서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뮤지컬의 코러스와 춤을 담당하며 주·조연 배우들은 든든하게 받쳐주는 ‘앙상블’이다. 무대 위 먼지처럼 존재감은 작아보일지 몰라도 뜨거운 열정으로 작품을 빛내는 뮤지컬의 ‘숨은 주인공’이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앙상블 김영호(왼쪽), 유낙원(사진=노진환 기자 shdmf@).


◇작품 든든히 채워주는 다재다능함

‘브로드웨이 42번가’(8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앙상블로 활약 중인 배우 김영호(29), 유낙원(21)을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앙상블이 없는 뮤지컬은 말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작품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다재다능한 이들이 바로 앙상블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출연하는 앙상블은 무려 25명. 이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춤과 노래로 무대를 꽉 채우며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든다. 앙상블은 혼자서 매회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원 캐스트가 기본이라 체력이 중요하다.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2막 계단 탭댄스 장면을 연기하고 나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유낙원은 “처음에는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에 계단 장면이 끝났는데 지금은 숨을 중간에 안 쉬고 할 정도로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제작과정의 뒷이야기를 그린 작품은 앙상블의 애환을 잘 담고 있다. 코러스에서 당당히 주연 배우로 발돋움하는 주인공 페기 소여의 활약은 모든 앙상블의 꿈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브로드웨이와 달리 국내에서는 앙상블이 단역·조연을 거쳐 주연으로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아서다.

티켓 판매를 위한 스타 배우의 캐스팅, 주연과 앙상블 간의 지나친 출연료 격차도 앙상블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앙상블의 출연료는 작품마다 계약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업계에서는 회당 4만~10만 원 안팎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공연제작사 관계자는 “출연료는 예민한 계약 문제인데다 제작사 간에도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있지 않아 공개가 쉽지 않다”며 “앙상블의 출연료는 밝히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김영호는 “불안감을 못 이겨서 이 바닥에서 떠나는 사람도 많이 있다”며 “대학에서도 이런 불안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공연을 하려면 티켓이 팔려야 하고 티켓이 팔리려면 일명 ‘스타’ 배우들이 출연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현실과 마주할 때마다 힘은 들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건강하게 이겨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앙상블은 관객이 눈길을 줄 때 큰 힘을 얻는다. 유낙원은 “가끔 인스타그램에 앙상블의 커튼콜 사진을 올려준 분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고 힘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김영호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관객이 앙상블도 많이 봐주는 편이지만 보통은 안 그런 경우가 많다”며 “앙상블은 힘들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보다 관심을 기울여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연습 장면(사진=CJ ENM).


◇언젠가는 주인공…조력자 되고파

빠른 1989년생인 김영호는 2012년 창작뮤지컬 ‘미스터 온조’로 데뷔해 ‘마리아 마리아’ ‘바람처럼 불꽃처럼’ 등에 출연하며 실력을 쌓았다. 2016년 ‘브로드웨이 42번가’와 인연을 맺은 뒤 3년 연속으로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출연하며 작품을 든든하게 이끌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뮤지컬을 본 뒤 뮤지컬배우의 꿈을 갖게 됐다. 김영호는 “뮤지컬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탭댄스라 2015년부터 학원을 다니며 따로 배웠다”며 “학원 대표님이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권오환 안무감독이라 그 인연으로 오디션에 지원해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낙원은 이번이 첫 뮤지컬 무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탭댄스를 배워온 실력자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지난해 한 차례 오디션에 지원해 합격했지만 학업 때문에 출연하지 못했다. 올해는 여름방학과 시기가 맞물려 데뷔 신고식을 치르게 됐다. 유낙원은 “제일 하고 싶었던 ‘브로드웨이 42번가’로 데뷔를 하게 돼 더 신나게 공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낙원은 페기 소여처럼 주인공이 되는 것이 꿈이다. 유낙원은 “언젠가는 ‘미스 사이공’의 킴이나 ‘번지점프를 하다’의 태희 같은 성숙한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호는 더 진중한 꿈을 키우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뮤지컬계로 많은 배우들이 쏟아져 들어올 텐데 그들의 꿈을 지켜주는 울타리이자 조력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한 장면(사진=CJ ENM).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앙상블 김영호(오른쪽), 유낙원(사진=노진환 기자 shd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