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월세·주민반대·분양전환 논란…역세권 청년주택 '3중고'

by김기덕 기자
2017.10.18 05:30:00

비싼 임대료 지적에 시끌
''저렴한 월세로 공급'' 취지와 다르게 시세 90%인 민간임대가 70% 넘어
"우리동네 안돼"…님비로 몸살
일조권 침해, 주변집값 하락 우려에 삼각지·광흥창역 주민들 반대 시위
땅주인만 배불리나
준공 후 8년 지나면 분양전환 가능…용적률 높아...

△서울 마포구 창천1구역 재건축 조합이 최근 서울시청 앞에서 역세권 청년임대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서울시가 청년 주거난 해소를 위해 추진 중인 ‘역세권 2030청년주택’ 사업이 삐걱거리고 있다. 비싼 임대료와 민간 사업자에 대한 과다 특혜 논란이 지속되는 데다 역세권 주변 집값 하락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발로 사업이 지체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전체 공급 주택 물량 중 70~80% 비중을 차지하는 민간 임대주택이 8년 간의 의무임대기간 이후 분양 전환이 진행되면 높은 임대료 탓에 저소득 청년층이 결국 거리로 내쫓길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우리 동네엔 안돼”…사업지마다 주민 반발에 몸살

역세권 청년주택은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지하철역 근처에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19∼39세의 대학생·사회초년생 등 청년 1인 가구나 신혼부부에게 우선 공급하는 준(準)공공임대주택 사업이다. 이달 현재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청년주택 대상지 46곳 가운데 총 10곳(5554가구)의 사업인가가 완료됐다. 이 중 용산구 한강로2가(1916가구), 서대문구 충정로3가(523가구), 마포구 서교동(1177가구) 3곳이 지난 3월 사업계획인가를 받아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사업인가 절차를 밟고 있는 곳은 12곳(6116가구)이며, 나머지 24곳(5968가구)은 사업지 선정을 마치고 사업인가를 준비 중이다. 서울시는 연내 1만 5000가구, 2019년까지 5만 가구의 역세권 청년주택을 공급한다는 목표다.

주거 취약층인 청년들에게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청년주택은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출발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와 해당 지역 주민들과의 엇갈린 이해관계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1호 사업인 용산 삼각지역 인근에 청년주택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해당 주민들은 대규모 이주에 따른 주거 환경 악화와 집값·임대료 하락 등을 이유로 결사반대를 외쳤다.

지난달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 청년주택 건설을 위한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이 가결되자 신림역 인근 임대사업자 수십여명이 서울시청으로 몰려와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마포구 창전동 일대에 청년주택이 건립된다는 소식에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 창전1구역 재개발 조합원들이 시청 앞에 모여 반대 집회를 열었다. 주변 난개발과 함께 일조·조망권을 침해받는다는 게 주된 반대 이유다. 서울시 관계자는 “역세권 청년주택을 발표할 때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항의 전화와 갑작스러운 집단 방문으로 업무가 마비가 될 정도”라고 전했다.

용산 삼각지역 인근 S공인 관계자는 “청년주택 반대를 님비(NIMBY) 현상으로 지적하기도 하지만 도심 중에서도 노른자 부지에 1000여명의 청년들이 한꺼번에 싼 임대료를 내고 입주를 하게 되면 주변 집값 하락이 뻔한데 어떤 주민이 환영할 수 있겠냐”며 “고층 건립에 따른 조망권 제한, 주변 교통 체증 등 문제가 많은데 서울시가 충분한 논의 없이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분양 전환 논란 “청년 내쫓겨” vs “임대료 상승 제한적”

문재인 정부도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임기 동안 대도시 역세권 지역에 청년주택 20만실을 확보할 계획이다. 아직 공급지역이나 임대료 수준, 사업 진행 방식 등 세부적인 밑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민간사업자에 대한 지나친 특혜와 고액 월세가 야기될 수 있어 사업구조를 대폭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업 초기부터 비싼 임대료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업지별로 전체 가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 임대주택은 주변 시세의 68~80% 수준의 임대료를 받는 공공임대와는 달리 최대 90%까지 임대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권에서 최초로 공급할 예정인 ‘신논현역 역세권 청년주택’(총 296가구)은 사업인가를 마치고 연내 착공을 앞두고 있다. 이 단지 인근 강남구 논현동 전용 23~30㎡짜리 오피스텔 임대료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만~90만원 선이다. 서울시 임대주택과 관계자는 “월세를 너무 비싸게 책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 가구 중 대부분을 전용면적을 30㎡ 이하로 구성하고, 월세를 50만원 내외로 책정하기 위해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역세권 청년주택은 준공 후 8년이 지나면 분양 수익으로 민간 회사만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시가 역세권 청년주택에 참여하면 3종 주거지를 준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으로 종상향하는 규제 완화를 해주기 때문에 민간사업자 입장에서는 같은 면적의 땅이라도 더 높게 지을 수 있어 사업성이 좋아진다. 분양 전환 이후에는 연간 5%로 제한됐던 임대료가 크게 올라 기존 청년들이 살 수 없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분양 전환 이후에도 공공임대 물량이 남아 있는데다 민간 주택도 평형대가 크지 않고 한꺼번에 많은 물량이 풀리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처럼 급격한 임대료 상승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여주기식 신규 임대주택 공급 확대보다는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기존 주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임대주택 공급 패러다임을 확 바꿀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임대인의 월세수익에 대한 과세 면제나 상속세 감면 등과 같은 구체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