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원의 덫]10년 전 기준 적용해 대출·세금 차별..억울한 서울시민
by성문재 기자
2017.08.16 05:30:00
6억원 초과 아파트 매수할땐
취득세율 2배 가량 껑충 뛰고
무주택 실수요자도 대출한도 줄고
종부세 과세 대상으로 분류돼
10년새 집값 급등한 현실 반영못해
'기준 올릴 경우 집값 더 오를 우려'도
[이데일리 성문재 기자] 1. 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주 서울 성동구에 있는 전용면적 84㎡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다운계약서(실제 거래 가격보다 낮은 금액으로 게약서를 꾸며 신고하는 것)를 썼다. 매도인이 6억1000만원에 내놓은 집을 가까스로 500만원 흥정에 성공했는데 계약을 하려고 보니 매수가격이 6억원을 살짝 넘는 바람에 취득세 부담이 600만원 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8·2 부동산 대책으로 성동구가 투기지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한도도 예상했던 것보다 작았다. 결국 A씨는 매도인과 합의해 매매계약서에 실제 지불한 금액보다 500만원 낮은 6억원을 기입했다.
2. 맞벌이 부부인 30대 회사원 B씨는 직장과 가까운 서울 마포구 전용 84㎡짜리 아파트 매물이 마음에 들어 6억2000만원에 매입하려고 결심했다. B씨는 다행히 8·2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기 전에 계약을 마무리지어 계획대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계약이 조금만 늦어졌다면 자력으로 마련해야 할 자금 규모가 수천만원 가량 늘어나 사고 싶은 집을 놓칠 뻔했다.
정부가 실수요가 아닌 투기세력을 근절하기 위해 고가주택 보유자에게 비용 부담을 안기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기준 자체가 10년 전 수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절반 이상이 6억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6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세금 차별은 투기 수요뿐만 아니라 실수요자들에게까지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6억6370만원이다. 지난달 28일 6억5903만원에서 2주만에 500만원 가까이 더 올랐다. 특히 강남·서초구는 평균 매매가가 13억원을 웃돌았고 용산구도 10억원을 넘었다. 송파구가 9억원대로 뒤를 이었고 양천·광진·성동구도 7억원에 바짝 다가서 있다. 종로·중·마포·강동·영등포·동작구까지 총 13개구가 아파트 1채당 평균 매매가격 6억원을 넘었다. 반면 도봉·노원·중랑·금천구 등 12개구는 상대적으로 6억원 이하 주택이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 평균은 이처럼 6억원을 훌쩍 뛰어넘었고 중위값(매맷값 순서대로 아파트를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있는 아파트값)도 이미 6억원을 돌파한 상태다. 서울 전체 아파트 가운데 절반 이상이 매매가 6억원을 웃돈다는 뜻이다.
집값이 6억원을 넘으면 대출 문턱은 높아지고 세금은 무거워진다. 현행 은행 감독규정에 따르면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에서 6억원 초과 아파트를 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총부채상환비율(DTI) 기준이 40%로 제한된다. 다만 금융당국은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 내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주택 유형, 대출 만기, 담보가액 등과 관계없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DTI를 각각 40%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개정 감독규정이 시행된 이후에 승인된 주택담보대출부터 적용된다.
그러나 실수요자가 내집 마련에 나서는 경우에 한해 주어지는 LTV·DTI 10%포인트 완화 방침에는 6억원 기준이 적용된다. 무주택 실수요자가 6억원 초과 주택을 사는 경우 LTV·DTI 완화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한 것. 서울 평균 매매가 수준인 아파트를 생애 첫 집으로 마련하는 실수요자도 투기세력 취급을 받는 셈이다.
6억원 기준이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종합부동산세다. 정부는 1가구 1주택이면서 단독명의인 경우에만 종부세 과세 기준을 9억원까지 높여줄 뿐 기본적으로 1인당 6억원을 초과하는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종부세를 부과하고 있다. 취득세율도 6억원 이하 주택은 면적에 따라 1.1~1.3% 부과되지만 6억원 초과~9억원 이하의 경우 2.2~2.4%로 두배 가까이 뛴다.
정부가 활성화하려는 임대사업자 등록에서도 기준시가 기준 6억원 초과 아파트 예외 방침이 발목을 잡고 있다. 다주택자가 임대주택 등록을 고려하는 가장 큰 유인 중 하나는 양도소득세 면제 혜택이다. 임대주택으로 등록하고 임대기간 10년을 채우면 팔 때 양도세를 100% 면제받을 수 있지만 기준시가 6억원 이하 주택인 경우에만 해당된다.
주택 가격 6억원 기준은 10년 전인 2007년 당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가 감독규정을 통해 도입했다. 이형주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은 “당시 6억원은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며 “그 이상은 실수요자 대상이 아니라 고가주택이라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우리나라 주택을 전체적으로 분류했을 때 중위가격 정도에 해당하는 주택이 6억원 안팎인 것으로 돼 있다”며 “서민 근로자 주택 구입 자금에 해당하는 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 상품이나 일부 세금제도에서 6억원 기준을 적용하고 있을 뿐 나머지 대상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값이 10년 전에 비해 크게 오른 상황에서 과거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가격 기준을 정하고 그 이상 주택에 대해 규제를 두는 정책을 펼치는 나라는 우리나라 빼고 어디에도 없다“며 ”굳이 고가주택을 구분하겠다면 상위 15%식으로 자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곽창석 도시와 공간 대표는 “특정 가격 기준에 따라 세금과 대출 규모가 달라지다 보니 다운계약서 작성과 같은 불법 행위가 행해지는 측면도 많다”며 “지역별로 기준 가격을 차등화하는 등 현실에 맞게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현행 6억원 기준을 상향할 경우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집값 6억원이 서울 기준으로 보면 중간값에 못미치지만 전국으로 보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며 “기준을 더 올릴 경우 지방은 적용 사례가 없어지는 데다 집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