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빛의 속도로 커 온 해외건설…이젠 질적 성장해야죠"
by신상건 기자
2015.01.29 06:00:00
[이데일리 신상건 기자] 1965년 11월 현대건설(000720)이 태국 고속도로사업을 처음 수주한 이후 우리나라 해외건설산업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해외건설산업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국가 경제 발전의 주요 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1970~1980년대에는 중동 신화를 이끌어냈고, 저유가 시기로 접어든 1990년대에는 주력 시장을 아시아 지역으로 옮겨 돌파구를 마련했다. 특히 고유가 기조가 시작된 2000년 이후 해외건설산업은 양적·질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2000~2004년 연간 해외 수주액도 54억달러에서 2010~2014년 연간 653억달러로 불과 10년 만에 규모가 12배나 커졌다. 하지만 최근 저유가·저성장·엔저라는 이른바 ‘신 3저(低)’ 현상이 나타나면서 해외건설산업은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건설산업의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 있는 해외건설협회의 중요성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최재덕(사진) 해외건설협회 회장을 만나 우리나라 해외건설산업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최재덕 해외건설협회장은 지난해 2월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 설립 등을 통해 해외건설산업 지원 업무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 회장이 서울 중구 서소문동 사옥에 있는 집무실 해외건설협회 로고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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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찾은 서울 중구 서소문동 해외건설협회 사옥 13층 회장 집무실. 한쪽에는 초대 홍승희 회장을 비롯해 전임 15대 이재균 회장까지 역대 협회 회장들의 액자가 빼곡히 걸려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의자에 앉자마자 질문도 하기 전에 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해외건설산업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 해외건설산업은 양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뒀죠. 하지만 한쪽에서는 해외건설 환경 변화에 따라 수익성이 들쑥날쑥한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최근 들어 신3저 현상으로 주변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숨 고르기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총 660억달러. 정부가 목표로 한 700억달러 달성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2010년 716억달러 이후 역대 2위의 실적을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표다. 연초 쿠웨이트 클린 퓨얼 정유공장과 이라크 카르발라 정유공장 건설 등 대규모 해외건설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주했지만, 하반기 리비아 등 중동지역의 정정 불안과 유럽·중국·일본 건설사들의 부상 등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수주액이 크게 줄었다.
문제는 올해 해외건설 환경도 절대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 저성장과 엔저 가속화, 저유가 등으로 우리나라 해외건설산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 해외건설산업이 국제 유가와 상관관계가 높은 만큼 저유가가 가장 큰 위협 요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1986년과 2009년 과거 두 차례 저유가 시대가 있었는데 한번은 실이 됐고 한번은 득이 됐습니다. 올해 역시 저유가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조직을 추스르고, 토목·건축 분야로의 공종 다각화와 건설·운영·기술 지원 등을 한번에 수행하는 투자 개발형 사업 확대 등을 통해 내실을 다지는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는 2012년 취임과 동시에 협회 본연의 업무인 해외건설 지원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향후 해외 건설 환경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하며 내실을 다지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 집약적인 결과물이 지난해 2월 설립한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다.
“지난해 우리 협회에 여태까지 해왔던 노력의 결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의 설립이죠. 이 센터를 통해 각종 해외건설 현안에 대한 대응과 정책 연구·개발(R&D)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로써 협회의 지원 기능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죠.”
이와 함께 그는 ‘K-Build 저널’을 통해 각종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정책 포럼과 세미나도 분기별로 개최해 정책 반영의 창구로 활용할 예정이다. 또 협회 안에 ‘사이버박물관(가칭)’을 만들어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해외 공사에 대한 기록과 홍보를 동시에 강화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해외건설산업이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보, 인력, 금융, 연구·개발, 고위급 외교 등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방인권 기자]그는 또 해외건설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정보, 인력, 금융, 연구·개발, 고위급 외교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해외건설 시장은 정부와 금융기관, 건설사 등이 총 망라된 국가적인 수주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 지난해 10월 국토교통성을 통해 인프라산업 해외 진출 지원 조직인 ‘해외교통·도시개발사업 기구’를 출범했다. 또 미얀마·대만·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의 신흥국에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민관 합동 수주지원단을 파견하며 시장 선점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기업 특유의 도전정신과 근면, 성실함이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대부분 현장이 오지에 있는데도 뛰어난 관리 능력을 발휘해 어떤 상황에서도 공기를 준수하고 성공적으로 공사를 완공한 경험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천기술 부족 등의 단점도 있는 만큼 정부가 연구·개발 지원 등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인적 자원 확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우리나라 해외건설산업은 외국어 능력과 해외 공사 경험을 두루 갖춘 기술 인력과 계약 관리·클레임 분야의 전문가가 부족한 상태다. 이 때문에 해외 수주 물량의 급격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공사 수행에 차질이 생기고 일부 현장에서는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불경에 보면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말이 있습니다. 백 년에 한번 물 위에 떠오르는 눈먼 거북이가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즉 좋은 사람과 인연은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 말로 인적 자원 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1948년생으로 대구 출신이다. 서울대 국어학과와 서울대 환경대학원을 졸업했다. 1990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 비서관을 시작으로 토지정책과·수도권계획·택지개발·주택정책과장, 국토정책·주택도시국장 등을 거쳤다. 2002년 건설교통부 차관보에 오른 뒤 2003년부터 1년간 건교부 차관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 2008년 대한주택공사 사장직에 올랐다. 2012년부터 해외건설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