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왈가왈부] 뇌 구조로 풀어본 김중수..‘동결’에 무게
by김남현 기자
2013.04.08 08:03:00
[이데일리 김남현 기자] 지난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행보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지난 2일밤 조원동 경제수석과 유일호 국회의원,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을 만난 게 세간에 알려졌고, 5일에는 비밀회의인 청와대 경제금융상황 점검회의(서별관회의) 참석가능성이 최대화두가 됐다. 서별관회의에 끝내 불참한 김 총재는 “중요한 시기에 중앙은행 총재는 중앙은행에 있어야 한다. 한은 일을 해야지 왜가나”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간 청와대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까지 나서 한은 금리인하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채권시장 또한 25bp를 넘어 50bp 인하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 총재의 속내는 그야말로 복잡다기할 것이란 판단이다. 김 총재가 아니니 그의 머릿속을 헤아릴 수 없지만 현 상황에서 그가 고민할 최대 이슈를 점검해 본다. 아울러 그 결과 4월 금통위 역시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이라는데 무게를 둔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 정치적 고려 최우선 과제일 듯
김 총재의 최대고민은 우선 ‘내 보스는 누구’인지라는 생각일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는 이명박(MB)정부가 임명한 총재다. 아울러 강만수 전 산은금융그룹 회장,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장관과 더불어 MB정부의 최대 공약인 747(연평균 7% 성장, 소득 4만달러 달성, 선진 7개국 진입)정책을 입안한 경제브레인이다.
김 총재가 한은 총재로 임명된 2010년 4월, 강 전 회장은 청와대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 자리에 있었고, 최 전 장관 또한 주필리핀 대사에서 청와대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저금리 고환율로 귀결되는 747정책에 날개를 단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자신의 보스라 할 수 있는 MB와 강 전 회장은 박근혜정부 출범과 더불어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보다 앞서 최 전 장관 역시 2011년 11월 퇴임한 후 지난해 3월부터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반면 김 총재는 박근혜 대통령과 사이가 좋다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및 국회의원으로 국회기획재정위에 몸담았던 2011년 6월15일, 국회 기재위원회의에서 가계부채 문제와 금리인상 속도를 두고 두 사람이 10여분간 설전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자신이 믿고 의지할 보스가 현직을 떠난 김 총재 입장에서는 현재 고립무원이다. 결국 총재 취임전 “한은도 정부”라며 정부와의 공조를 강조했던 김 총재 입장에서는 그 ‘정부’가 사라진 셈이다.
아울러 김 총재의 임기가 이제 1년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위 말년 인식이다. 군대 계급에 준장, 소장, 중장, 대장 위에 말년병장이 자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김 총재가 보스도 없는 마당에 남은 1년간 누구 눈치(?)를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 총재는 우리나라 나이로 67세(1947년생)다. 사석에서 김 총재는 “총재가 끝난 후 할 수만 있다면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해보는 게 꿈”이라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학시절 야구 동아리 활동을 했고, 맹타를 휘둘렀던 강타자였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그가 한은 총재 이후 정부의 주요요직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설들이 나돌 때라 이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당시 그의 말 속에는 소싯적 꿈이 담긴 큰 욕심 없는 분위기를 느꼈다는 점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 한은 입지 강화 필요성 대두
인하와 동결의 실익을 계산할 가능성도 높다. 후퇴할 공간 없이 밀어붙이고 있는 대외 압박에 굴복해 인하를 단행한다면 김 총재와 한은 이미지는 ‘남대문 출장소’로 굳혀질 가능성이 높다. 김 총재 스스로 그간 자신의 언급을 뒤집는 꼴이 된다는 점에서도 신뢰성에 직격탄을 맞는다. 그는 지난달 14일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올해 상저하고 전망은 유효하다. 1분기 성장률은 작년 4분기보다 훨씬 높은 숫자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에도 “(기준금리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없다”며 금리를 내리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온 바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동결을 단행한다면, 그가 받아온 그간의 오해(?)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전망이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으로부터 비난은 받겠지만 최악의 경우 중도사퇴로 물러나면서 ‘한은 독립성’을 지킨 명예로운 총재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김 총재는 1년 남은 임기동안 조직 장악을 위한 영향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최근 한은이 사실상 인사권을 갖고 있는 금융결제원장 자리에 김종화 부총재보를 임명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정부 출범 후 한은과 관련된 첫 인사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과 김 총재간 헤게모니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며 이번 인사가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기도 했다.
아울러 오는 5월 장세근 부총재보가 퇴임한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를 계기로 임원급만 두 자리가 비게 된다. 김 총재는 그간 발탁인사를 통해 조직 인사적체 해소와 함께 조직 장악력을 높여왔다는 점에서 다가올 후속인사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대외 압력에 무릎을 꿇고 금리인하를 단행한다면 그런 김 총재에 대한 내부직원의 반발 역시 상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후속인사는 물론 그간 쌓여온 내부 불만이 폭발, 남은 임기 내내 상황이 꼬일 것으로 보인다.
◇ 경제상황 보기 나름, 중요한 것은 ‘마이너스 GDP갭’
대내외 경제상황 역시 주요 고민거리다. 우선 김 총재가 그간 강조해온 ‘정책공조(폴리시 믹스(policy mix)’에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여건과 대응 변화도 포함된다.
그런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달 4일(현지시간) 정책금리를 현행 0.75%로 동결했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추가 부양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곱씹어 보면 사실상 원론적 수준에 그친다. 즉 “경제상황이 나빠질 경우 추가 부양에 나서겠다”고 언급한 그의 발언은 결국 배가 고파지면 밥을 먹겠다는 의미와 다름 아닌 셈이다.
미국에서는 지난주말 3월 고용지표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비농업부문 신규고용이 8만8000명 증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기존 7.7%에서 7.6%로 낮아졌지만 미 금융시장은 실망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미 연준(Fed)의 긴축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 역시 미국에서 재정절벽 등 이슈가 한창이었을 때라는 점에서 한 꺼풀 벗겨본 후 바라볼 여지도 있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미 연준이 이달 30일부터 내달 1일까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OMC)를 열고 정책금리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이를 지켜볼 시간도 필요해 보인다.
일본중앙은행(BOJ)이 예상보다 큰 양적완화정책을 내놨다. 다만 이 또한 아베정권 출범과 BOJ총재 교체 등에 따른 예상가능한 수순이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지난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고자 하는 일본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이달 수정경제전망을 내놔야 한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기획재정부가 올 전망치를 3.0%에서 2.3%로 대폭 낮춘 마당에서 2.8%를 예측하고 있는 한은도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은 실무자 역시 신중모드 속에 전망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감지됐다. 한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망이라는게 사실 어려운 작업이다. 한은이 맞을 수도 있고 (정부 등) 다른 기관이 맞을 수도 있다.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경제상황에 비춰 한은 또한 2.6%대로 낮춰 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은이 경제전망치를 낮춰 잡는다 해도 전망치가 대폭 낮춰지지 않는 이상 금리동결 가능성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바로 마이너스 GDP갭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여서다.
이같이 예상하는 근거는 지난달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문구에서 이 부문과 관련된 언급이 수정됐기 때문이다. 한은은 지난달 통방문구에서 ‘상당기간 마이너스의 GDP갭을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두 번째 금리인하가 단행되기 직전달인 9월부터 지난 2월까지 유지해온 ‘마이너스의 GDP갭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에서 변화된 입장이다.
김 총재는 당시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문구변화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같은 말이 몇 개월간 지속되다보니 당초 예상했던 GDP갭 마이너스 기간이 연장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줄 수 있다”며 “애초 예상했던 그 기간에 변화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전망치가 설령 낮춰진다 해도 GDP갭 마이너스 기간이 당초 예상했던 어떤 기간까지만 지속될 것이라는 김 총재의 입장이 한 달만에 바뀌긴 힘들다는 판단이다. 특히 지난해 7월 GDP갭이 갑작스레 마이너스로 반전하면서 금리인하가 단행된 점에 대한 비판이 컸다는 점에 비춰 봐도 그렇다. 이같은 비판을 의식한 한은은 이후 경제동향은 물론 GDP갭 변화를 수시로 점검해 김 총재는 물론 금통위원들에게까지 보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최근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북한위협 등 기타 정치경제상황 또한 고려대상으로 삼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대북상황이 실제 충돌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김 총재와 한은이 나서서 금리인하를 단행킨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렇잖아도 낮은 기준금리 수준으로 정책여력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가시적 위협이 현재화되지 않는 이상 선제적(?) 인하로 대응키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예의주시하는 정도에서 상황진단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