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 줄어드니 꽃게가 풍년?

by조선일보 기자
2006.09.21 07:41:49

소래포구 판매량 37% 늘어
“어린 꽃게 잡아먹는 주꾸미 최근 남획으로 크게 준 탓”
전문가 “가능성 있는 얘기”

[조선일보 제공] 20일 인천광역시 논현동 소래포구. 흥정이 깨져도 사는 사람 파는 사람 모두 신났다. 바다에서 막 건져온 싱싱한 꽃게들이 집게발을 휘두르며 손님들의 눈길을 잡는다. 소래시장에서 15년째 좌판을 열고 있다는 임인자(49)씨는 “제대로 된 꽃게 본 것이 3년 만인 것 같다”며 “올해는 꽃게 덕분에 가을 포구에 활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15일까지 소래 포구를 통해 팔려간 꽃게는 총 63t.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늘었다. 소래어촌계 박용남 과장은 “지난해 180여t에 불과했던 꽃게 어획량이 올해는 잘하면 300t까지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평년(2002년 어획량 1623t)에 맞추려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작은 포구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한 양이다. 풍어로 꽃게 값도 하락했다. 지난해보다 20% 정도 떨어진 1㎏당 1만5000원 수준이다.

오랜만의 꽃게 풍어는 무슨 조화일까. ‘꽃게 치어 방류 사업이 결실을 본 것’ ‘꽃게가 산란하는 모래톱을 덜 퍼낸 탓’ ‘올해 여름이 길고 비가 많이 와서’ ‘지구 온난화로 서해 수온이 높아져서’….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주꾸미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눈길을 끈다. “어린 주꾸미들이 막 알에서 깨어난 꽃게 치어(稚魚)를 먹어 치우거든. 최근 몇 년간 주꾸미를 잔뜩 잡았더니 요놈들 수가 줄어 꽃게가 풍년이 난 거야.” 선주 김용진(51)씨의 해석이다.




▲ 오랜만에 꽃게 풍어를 맞은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소래포구 상인들이 20일 상자 가득 흘러 넘친 꽃게를 크기와 무게에 따라 골라 담고 있다.

주꾸미는 꽃게보다 한달 이상 이른 4~5월에 산란을 한다. 꽃게알이 따뜻한 여름 바닷물에 깨어날 7월이 되면 주꾸미들이 벌써 3~4㎝크기로 부쩍 커 있을 때다. 공교롭게도 주꾸미와 꽃게의 서식지는 모두 바다 밑바닥 근처 깊은 물 속. 먹을 것이 부족한 어린 주꾸미에겐 채 1㎝도 안 되는 작은 꽃게 새끼들이 맛있는 간식거리다. 8월 말만 되어도 꽃게가 부쩍 자라 주꾸미와 맞먹게 되므로 불과 7~8월 한 달 새 벌어지는 일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김병균 박사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속설이긴 해도 가능성 있는 얘기”라고 말했다. “어민들의 설명처럼 서식지의 유사성이나 산란 시기의 차이 때문에 주꾸미와 꽃게 간의 먹이사슬이 형성될 수도 있죠.”

공교롭게도 꽃게가 사라졌던 지난 3년간 주꾸미는 대풍어였다. 동시에 주꾸미 수요도 급증했다. 김병균 박사는 “주꾸미는 그리 인기 있는 어종이 아닌데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서해안 포구들이 앞다퉈 ‘주꾸미 축제’를 열자 수요가 폭발했다”며 “요즘은 오히려 주꾸미 남획이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소래 어민은 “망하는 놈 덕택에 덕 보는 놈 있기 마련”이라며 “서해 바다에서는 주꾸미가 망하면 꽃게가 흥하니 이게 바로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