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가족부터 '노화' 관리"…국가가 직접 나서 '나이듦' 연구도
by권효중 기자
2023.07.25 06:04:00
[대한민국 나이듦]⑥
국가가 ''노화연구소'' 만들어 직접 건강 관리·노화 연구
"단순 경제적 지원 넘어 ''건강한 삶'' 위해 총체적 관리해야"
"지역·가족 단위 관리가 기본, 노인 역할 재설정돼야"
[아바나(쿠바)=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2021년 1조 달러 이상을 기록해 국내총생산(GDP)순위 11위였던 한국과 비교하면 쿠바의 GDP는 820억 달러로,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경제난에 시달리며 매일 아침마다 긴 배급 줄을 서는 쿠바인들이지만, 이들에겐 늙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 아바나에서 만난 레오나르도 로메로 하르디네스(35) 노화연구소 부국장은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 외 복합적인 지원을 통해 나이듦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레오나르도 로메로 하르디네스 쿠바 노화연구소 부국장 (사진=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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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가 지난달 7일 방문한 아바나의 칼릭스토 가르시아 병원, 이 병원에는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노화연구소가 함께 설치돼 노인들의 건강한 노화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노인 관련 질병 치료도 가능해 아픈 노인들 중 지역 진료소나 일반 병원보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면 방문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설의 수준은 한국에 비하면 다소 낡았지만 병원을 가득 메운 의료진들은 환자를 직접 부축하며 인솔하고, 의사들은 한 방에서 오랫동안 환자와 대화를 나눴다.
사회주의 체제를 갖춘 국가인 쿠바는 소련의 붕괴 이후 경제적 원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데다가 코로나19를 겪으며 주요 산업인 관광업에 타격을 입었다. 경제적인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공공 의료 제도 덕분에 기대 수명은 77.7세로, 한국의 83.5세와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 은퇴 연령(남성 65세, 여성 60세)을 넘기고도 노인들은 원한다면 일을 할 수 있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각종 복지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하르디네스 부국장은 한국과 다른 쿠바의 의료 시스템을 소개했다. 지역 주치의 역할을 시행하는 지역 진료소(콘술토리오), 일반 병원과 전문 병원으로 이어지는 3단계 구조를 통해 치료보다 예방 중심, 중앙보다 지역 중심으로 치료의 패러다임을 설정한 것이다. 여기에 노령연금과 은퇴 후에도 특별 법령을 통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며 고령화에 맞춰 노인들의 최소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르디네스 부국장은 “작은 단위부터 노인들의 기능을 보살핀 후, 종합적인 정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순히 신체적인 건강뿐만이 아닌, 가족과 지역에서부터 이들의 정신적인 안위를 챙기고 역할을 고민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 노화연구소에서 노인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권효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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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콘술토리오의 의사들은 단순한 의료인을 넘어, 지역의 총체적인 보건 관리자 역할까지 수행한다. 1주일에 1번은 가정 방문을 하고, 환자의 가족 관계나 이웃 관계 등을 꿰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하르디네스 부국장은 “기초 단계부터 구성된 쿠바의 시스템과 더불어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등이 전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노인 자체의 문화는 물론, 가족 안에서의 역할을 설정해나가며 ‘노화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노인의 역할을 재설정하고, 이들이 ‘짐’이 아니라는 인식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르디네스 부국장은 노화연구소의 실험실, 의료진 등을 직접 소개해주기도 했다. 운동 기구를 갖춘 방이 있어 노인들이 직접 운동능력을 측정하고, 재활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의료진 중 최고 ‘베테랑’은 73세로, 여전히 현역 의사로 활동하며 노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연구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다. 하르디네스 부국장은 “‘나이듦’ 역시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 중 하나로, 건강한 노화가 우리 모두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의 문제가 아닌 만큼, 전체 사회에서 노인 스스로가 역할을 찾고 적응해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와 국가 차원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