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만원 넘어 18만원까지…뮤지컬 티켓 가격 '고공행진'

by장병호 기자
2022.10.13 06:30:00

''물랑루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연말 대작
물가 및 인건비 상승 따라 티켓 최고가 인상
뮤지컬계 "외부적 요인 따른 불가피한 선택"
"제작환경 변화 꾀하지 않으면 관객 떠날 수도"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뮤지컬 티켓 가격이 ‘고공행진’ 중이다. 최고가 15만원을 유지하던 관행을 깨고 16만원을 넘어 18만원까지 티켓 가격이 치솟고 있다. 제작사들은 물가와 인건비 상승 등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관객의 공연 접근성 확대를 위해선 제작 환경 개선과 함께 보다 다양한 티켓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뮤지컬 ‘물랑루즈!’ 포스터. (사진=CJ ENM)
공연제작사 CJ ENM은 오는 12월 20일 서울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개막하는 신작 뮤지컬 ‘물랑루즈!’의 VIP석 티켓 가격을 18만원으로 책정했다. 해외 뮤지컬의 내한공연이 아닌 국내 제작 대극장 뮤지컬이 티켓 최고가를 18만원으로 책정한 것은 ‘물랑루즈!’가 처음이다.

이번 공연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제작진이 직접 참여하는 ‘레플리카 프로덕션’(무대·의상·소품까지 원작 그대로 재현하는 공연)으로 제작된다. 뮤지컬 넘버 또한 마돈나, 비욘세, 아델 등 세계적인 팝 가수들의 히트곡 70여 곡을 ‘매시업’(mash-up·여러 곡을 하나로 합치는 것)한 음악으로 구성하면서 높은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CJ ENM 측의 설명이다.

CJ ENM 관계자는 “‘물랑루즈!’는 전 세계 공통으로 같은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무대·의상·소품·가발 등을 국내가 아닌 해외 지정 제작소에서 제작하며, 오리지널 제작진이 국내 제작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일반적인 국내 작품보다 제작비 규모가 크다”며 “한국 뮤지컬시장 특성상 오픈런(공연이 끝나는 날짜를 않고 진행하는 공연)이 아닌 리미티드 런(공연이 끝나는 날짜가 정해진 공연)으로 운영돼 제작비 규모에 맞춰 티켓 가격을 책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연제작사 쇼노트가 다음 달 17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VIP석 티켓 가격은 16만원이다. 김준수, 박강현, 고은성 등을 필두로 한 40여 명의 배우들을 비롯해 대규모 제작진이 참여하다 보니 물가 및 인건비 상승에 따라 티켓 가격도 높게 책정됐다. 쇼노트 관계자는 “물가 상승(2022년 7월 기준 전년 동월비 6.3% 인상)에 따른 무대 세트, 조명, 의상 등의 제작비용이 증가했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인력 수급의 어려움이 더해지면서 인건비가 상승해 티켓 가격을 인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토니 역을 맡은 배우 김준수(왼쪽부터), 박강현, 고은성 캐릭터 포스터. (사진=쇼노트)
다른 제작사들도 최근 경제적 상황에 따라 뮤지컬 티켓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한국의 뮤지컬시장은 브로드웨이처럼 장기 공연이 쉽지 않아 외부 경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영화나 콘서트도 티켓 가격이 올랐는데, 뮤지컬 또한 물가 상승은 물론 인건비와 대관료 등이 덩달아 오른 상황이라 티켓 가격도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올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 여파에 따른 티켓 가격 인상은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무작정 티켓 가격만 올려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뮤지컬 제작 환경의 변화를 꾀하지 않고 티켓 가격만 올린다면 잘되는 공연만 잘 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고, 결국엔 관객도 떠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티켓 가격을 안정화하려면 그만큼 공급을 늘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장기 공연 시스템이 자리잡아야 한다”며 “장기 공연 시스템이 어렵다면 뉴욕시처럼 우리도 뮤지컬을 문화예술 활동의 일환으로 바라보며 정책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하거나, 뮤지컬에 대한 투자를 보다 쉽게 하는 방법을 마련해주는 등의 방법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관객이 부담 없이 뮤지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티켓 정책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혜원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뮤지컬 티켓 가격을 평균적으로 따져 보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트에 비해 결코 비싸지 않지만, 문제는 객석 등급에 따른 가격 편차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라며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당일 저렴한 가격에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로터리 티켓’, ‘러시 티켓’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관객이 보다 다양한 통로로 뮤지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