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마켓워치]<9>파월은 어쩌다 증시에 찬물 끼얹었나

by이정훈 기자
2020.06.13 07:22:58

거칠 것 없던 뉴욕증시, 파월 의장 발언에 급브레이크
나바로 백악관 국장 "파월, 입 다물고 있는 게 최선"
"솔직해지자"는 파월 "경기·고용 회복까지 갈 길 멀다"
3월에 경기침체 진입…반년 이른 주식 랠리에 우려
수익률곡선관리 피하고자 장단기 금리차 확대 경고

올 초 이후 미국 S&P500지수 추이 (미국 CNBC)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지난 10일(현지시간) 이틀간의 회의 일정을 끝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글로벌 주식시장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사상 최대치까지 올랐던 나스닥지수를 앞세워 두려울 것 없이 오르던 증시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사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 확산되면서 지난 3월23일 장중 2191선까지 추락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지난 8일에 3233선까지, 불과 두 달 반 만에 47.6%나 급반등할 때만 해도 `경제지표나 기업이익 회복속도에 비해 주가가 너무 급하게 오른다`는 경고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경제활동이 재개되면 지표도, 기업이익도 좋아질 것`이라는 일종의 마법 주문이 모두를 홀린 듯 했으니 말이죠.

그 와중에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2주 연속으로 200만건 아래로 내려왔고, 급기야 5월 고용지표에서는 833만명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깨고 실제 비농업 취업자 수는 250만명 이상 늘어나는 일이 벌어지니 시장참가자들은 일말의 우려까지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FOMC 회의 이후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내놓은 주요 메시지는 뉴욕증시에 `리얼리티 체크(Reality Check)`가 됐습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현타(현실자각타임)` 말이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 10일(현지시간) FOMC 회의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증시에 얼마나 찬물을 끼얹었는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역사상 최악의 `병상 매너(Bedside Manner·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지닌 연준 의장일 겁니다. 앞으로는 통계치를 제공하고 금리가 어디로 갈지 알려만 주곤 입을 다무는 게 최선일 겁니다”라며 파월 의장을 저격했습니다.

그러나 파월 의장이 뉴욕증시에 저주스러운 발언을 쏟아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기자회견 모두에 “우리는 솔직해져야 합니다”라고 했던 그의 발언처럼 그저 현실을 사실대로 얘기했던 것인데, 아무래도 시장은 이를 불편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월 의장은 “연준이 가지는 이중 정책목표(Dual Mandate·물가안정과 완전고용)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 경제와 고용이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멉니다. 우리 목표까지 가는데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겁니다”라고 했을 뿐입니다. 물론 “(5월에 비농업 취업자수가 그렇게 늘어난 건) 사실 생각지도 못했던 수치”라고 운을 떼면서 “5월에 고용이 바닥을 찍었을지 아직 알 수 없구요. 이런 지표 하나하나에 과잉 반응을 해선 안됩니다”라며 5월 고용 서프라이즈를 평가절하한 것이 불만스러울 순 있습니다.

그래서 파월 의장은 “경기 하강 정도는 매우 불확실하며 결국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라며 모호한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기준금리를 인상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할 겁니다”라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는 파월 의장의 개인 의견이 아니며 연준 이코노미스트들이 고민한 미국경제 전망의 결과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날 연준 실무진은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6.5%까지 추락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내년에 5.0%, 3.5% 회복할 것으로 점쳤지만, 당장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월가 전망에 비해서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실업률 전망치는 더 비관적이었습니다. 올해 실업률이 무려 9.3%까지 치솟을 것으로 점친 연준 실무진은 내년과 내후년에도 실업률이 각각 6.5%, 5.5%에 이를 것이라고 봤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지난 2월에 반세기 만에 최저였던 3.5% 실업률과는 거리가 멉니다. 적어도 고용 측면에서는 내후년까지도 코로나 이전 수준 회복이 요원하다는 얘깁니다.

역대 미국 경기침체기 지속 기간




파월 의장과 연준 실무진이 이런 발언과 전망을 내놓은 건 과도하게 오르는 뉴욕증시에 일정부분 제동을 걸고 시장 안팎에서 확산되는 위험자산 선호(Risk-on)와 고(高)수익 추구(Hunt for yield)를 경고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주식시장이 아무리 경기에 선행한다고 하지만, 2주 전에 이미 경기선으로 불리는 200일 이동평균선을 회복한 뒤 연고점까지 뚫어낸 시장 상황은 과도해 보였을 수 있습니다. FOMC 회의 이틀 전 민간 씽크탱크인 전미경제연구소(NBER) 경기판단위원회는 “올 2월을 정점으로 지난 2009년 6월에 시작된 경기 확장기가 끝나고 침체기가 시작됐다고 본다”며 3월부터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Recession)에 들어섰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난 1900년 이후 미국 경기침체국면은 평균 15개월 정도 지속됐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번 침체기도 내년 6월까지는 이어질 수 있습니다. 증시가 통상 경기침체기를 벗어나기 6개월 전부터 오른다고 보면 올 연말쯤에야 본격 랠리를 시작해야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현재의 랠리는 좀 성급해 보일 수 있습니다.

아울러 파월 의장은 최근 장기금리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뛰면서 장단기 금리 차이가 확대되는(=채권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지는) 상황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 2주 전까지만 해도 23bp 수준이었던 10년과 2년만기 미 국채간 스프레드는 FOMC 회의 개최 당시엔 45bp까지 확대됐었습니다. 지금은 이보다 더 벌어져 스프레드는 50bp까지 와 있습니다.

장단기 금리 차이는 경기선행지표 구성요소일 정도로 경기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데요. 일반적으로는 장단기 금리 차이가 벌어지는 건 향후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 들여집니다. 텅싱 인플레이션이 뛸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거나, 그로 인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거나 위험자산 선호가 높아져 채권 보유심리가 약해지면 장기금리는 오르기 마련입니다. 특히 단기보다 장기금리가 더 오른다는 건 경기가 좋아지고 총수요가 살아나 인플레이션이 뛸 때 나타나는데요.

지금은 상황이 약간 다릅니다. 물론 향후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살아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2분기에 무려 2조9900억달러에 이르는 역대급 국채 발행을 통한 정부 자금 조달이라는 공급 요인에 의해 금리가 상승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3분기에도 7900억달러 이상 국채를 또 찍어야 하구요. 이 과정에서 작년 1년만기로 주로 발행한 국채를 차환하면서 만기 10년과 20년물 이상 장기국채로 발행하려 하자 금리가 더 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연준은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통해 꾸준히 장기국채를 사들이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계속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매주 사들이던 매입규모를 다소 줄였다며 벌써부터 불만입니다. 뉴욕 연은은 3월말 무제한 양적완화 도입 이후 첫 2주일간 5500억달러 어치를 사들이며 주간 평균 2750억달러 어치를 샀습니다만 지금은 한 달 평균 1200억달러 정도로 매입규모를 크게 줄였습니다. 시장 안정을 감안한 조치지만, 시장 참가자들은 “이러다 연준이 발을 뺴진 않을까”하는 생각도 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결국 조만간 연준은 자신들이 1940년대 2차 대전 당시에 썼고 현재는 일본은행(BOJ)이 쓰고 있는 수익률곡선관리(YCC)라는 조치를 꺼내들어야 할 판입니다. 국채 2년물이든 5년물이든 10년물이든 타깃을 정해 일정한 목표수준 이상 금리가 뛰면 국채를 사들여 금리를 목표치에 고정시키겠다는 겁니다. 이번에도 파월 의장은 “우리는 여러 수단을 검토하고 있으며 수익률곡선 관리도 그 중 하나”라며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미 국채 10년과 2년만기 금리 스프레드 (CNBC)


그러나 시장가격을 직접 조절해야 하는 정책의 특성상 이 YCC는 한 번 도입하고 나면 짧게는 5~6년, 길게는 10년 이상 되돌리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2016년 도입한 BOJ도 대체 언제쯤 발을 뺄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연준으로서는 가급적 꺼내들기 싫은 카드이구요. 그래서 장기금리 상승을 바라 보면서 경기가 좋지도 않은데 마치 경기가 좋은 것처럼 받아들이는 시장 참가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파월 의장은 주식시장, 나아가 금융시장 전반에서 나타나는 과열에 일정부분 제동을 걸곤 싶었겠지만, 아예 의도적으로 찬물을 끼얹으려 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랬었다면 굳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지금까지 속도로 유지하겠습니다”라거나 “2022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할 겁니다”, “YCC를 검토하고 있습니다”라는 얘기도 힘줘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현재 미국에서는 경제활동 재개 이후 일부 주(州)에서 코로나19 발병이 다시 늘어나며 2차 유행 우려가 불거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음 주부터 대선 유세를 재개하는 트럼프 대통령도 다시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 번 제동 걸린 뉴욕증시는 좀더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크게 늘어난 광의의 통화(M2)가 유지되는 한 유동성 장세의 큰 물줄기가 바뀌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