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절차 돌입한 한진重 수빅조선소…기술·인력 확보 난제 못풀었다

by남궁민관 기자
2019.01.16 05:00:00

[이데일리 남궁민관 유재희 기자] 한때 수주잔량(CGT) 기준 전세계 조선소 10위에 이름을 올렸던 한진중공업(097230) 수빅조선소가 필리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며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전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조선 기술력과 필리핀의 저렴한 인건비 등 ‘두 토끼’를 잡아 세계적 규모의 조선소를 만들겠다던 한진중공업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전세계 조선업의 심각한 불황에 가로막혀 실패에 직면하게 됐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필리핀 올롱가포 법원은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HHIC-Phil)가 8일 신청한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 불황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일감이 급격하게 줄어든 상황에서 4억달러에 이르는 필리핀 현지 은행들의 자금상환 요청이 일시에 들어온 것이 이번 결정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이에 법원은 실사를 거쳐 140일 이내 회생절차(법정관리) 또는 청산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다만 실질 소요 기간은 6개월에서 1년까지 늦어질 수 있다. 일부 필리핀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이 수빅조선소 경영권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빅조선소 기업회생절차 여부와는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한진중공업 유동성 확보를 위해 동서울터미널과 율도부지 매각에도 속도를 올릴 계획이다. 당초 한진중공업은 ‘경영정상화계획의 이행 약정(MOU)’에 따라 지난해 12월31일까지 매각을 완료해야 하지만, 해당 MOU를 2020년 12월 31일까지 연기하면서 최종 매각까지 다소간 시간을 벌게 됐다.

한진중공업은 상선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리핀 수빅만 경제구역내 90만평 부지에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총 7000여억원을 투자해 수빅조선소를 건설했다. 기존 국내 영도조선소는 부지가 좁아 대형 상선을 건조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 영도조선소에서는 특수선, 수빅조선소에서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상선을 건조하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을 세운 것이다.

전세계에서도 최고 꼽히는 한국 조선 기술력과 필리핀의 저렴한 인건비를 모두 확보하겠다는 것 역시 주요 전략에 포함됐다. 필리핀은 인건비와 생산성 모두 한국 대비 현저하게 낮지만, 생산성은 높일 수 있다는 게 한진중공업의 판단이었다. 실제로 한진중공업은 2014년 말 필리핀 인건비는 국내 대비 최대 20분의 1 수준이나 노동생산성은 당시 기준 60%까지 따라왔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전세계 조선 시장에 불황이 불어닥치기 전까지는 이같은 전략은 주효한 모습이었다. 2009년 완공 이래 5년 만인 2014년 8월 누적 수주량 100척을 기록한 데 이어 같은해 10월 누적 매출액 50억달러를 달성했다. 당시 수주잔량은 총 39척, 약 26억달러 규모로 3년치 일감을 확보한 상황이기도 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은 2014년 5월 수주잔량 기준으로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가 전세계 조선소 중 10위를 기록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성공적으로 연착륙하는 듯 보였던 수빅조선소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전세계 조선업계 수주절벽이 발생한 시기와 맞물린다. 수빅조선소는 2013년 34척(컨테너이너선 26척, LPG선 8척)을 수주했지만 이후 2014년 6척(컨테이너선 2척,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4척), 2015년 9척(컨테이너선 9척)으로 신규 수주가 급감했다. 2016년부터는 주력 선종인 컨테이너선을 단 한척도 수주하지 못하면서 위기는 가속화됐다. 2016년 탱커 2척, 2017년 탱커 6척, 2018년에는 5월 기준 LPG선 2척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그 사이 수주잔량 역시 크게 떨어졌다. 2013년 액수 기준 29억1900만달러에 이르렀던 수주잔량은 2014년 18억7700만달러, 2015년 16억6200만달러로 떨어졌다. 전세계적으로 수주절벽이 본격화된 이후 2016년에는 8억7000만달러, 2017년 2억8100만달러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2018년 3분기 기준 수주잔량은 총 14척, 3억4200만달러를 기록 중으로 현재는 이보다 적은 10척 안팎이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전세계 대형 LNG운반선 59척을 싹쓸이하며 일감확보에 성공한 국내 주요 조선소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관련업계에서는 수빅조선소가 인건비 절감에 집중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기술 및 숙련 인력 확보에는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초 한진중공업은 생산성을 최대 60%까지 확보했다는 설명을 내놓았지만, 중국이나 필리핀 등 현지 인력들은 일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한국 인력들과 아예 달라 이같은 생산성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더군다나 필리핀은 습하고 더운 기후 영향으로 야외 작업이 많은 조선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지 인력을 교육하면 이탈하고, 또 다시 교육하는 악순환 속에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국 조선기술력을 현지에 이식하는 것은 단기간에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중국 조선소들이 대형 LNG운반선 단 한척도 수주하지 못했는데 LGN운반선 실적이 전혀 없는 수빅조선소 역시 마찬가지”라며 “마침 주력 선종인 컨테이너선의 경우 지난해 현대상선을 제외하고는 전세계 발주가 뚝 끊기면서 수주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