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 91.아마존발 서점업계 후폭풍

by한정선 기자
2018.10.11 06:00:00

프랑스 파리 한 서점(출처:gibert.com)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얼마 전 영국 오프라인 서점업계가 미국 온라인 유통공룡 아마존 때문에 휘청거리고 있으며 미국의 헤지펀드가 영국 대형 서점 체인인 워터스톤스와 포일즈를 잇따라 인수해 자금을 투입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서점업계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다는 글을 썼습니다.

종이책을 서점보다 저렴하게 팔거나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전자책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마존의 영향은 비단 영국 서점업계서만 논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 출판업계와 서점업계 또한 아마존과 관련한 논란에 휩싸였는데요. 바로 프랑스 4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르노도 상 측이 17편의 소설, 7편의 에세이 등으로 구성된 수상 후보작 가운데 하나로 전통적인 출판업계의 종이책으로 출간 책이 아닌 작가가 아마존의 온라인 출판 플랫폼을 이용해 스스로 출간한 작품을 선정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작품은 마르코 코스카스의 책 ‘방드 드 프랑세’로 이스라엘로 떠나는 프랑스 출신 유대인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존 플랫폼을 이용하면 작가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전자책이나 종이책으로 출간할 수 있으며, 작가가 책 가격을 책정하고, 책이 팔리면 아마존과 수입을 나누는 형식입니다. 아마존이 독점적으로 책을 판매하기 때문에 다른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서점에서는 책을 팔지 못하게 됩니다. 서점들이 이 책을 팔려면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아마존에서 주문해 판매해야 하는데 서점들은 거부하고 있습니다.

가을은 전통적으로 프랑스 서점업계의 성수기고 르노도 상의 명성 덕분에 수상작 후보군에라도 오르면 책의 판매 부수가 크게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방드 드 프랑세’의 경우는 서점들이 팔지 못하게 되면서 매출을 올릴 기회를 잃게 된 것이죠.

프랑스 서점업게는 르노도상 측의 이번 결정에 대해 “책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국가적 전통을 위협하는 공룡의 편을 들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기존 출판업계가 아닌 온라인상으로 자가 출판한 책은 후보작으로 선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서점업계를 대표하는 프랑스서점협회는 “‘방드 드 프랑세’를 르노도상 후보작으로 선정한 것은 작가는 물론 서점업계에도 손해를 끼치고 향후 책 출간과 유통과 관련해 우려스러운 징조”라고 말했습니다.

코스카스는 기존에 10권 이상의 종이책을 출간한 작가이지만 ‘방드 드 프랑세’를 출판해 줄 출판사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아마존의 플랫폼을 이용해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말했습니다. 그는 르노도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것에 대해 자랑스럽다면서 서점업계가 자신의 책이 후보작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페어플레이가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코스카스는 “서점업계가 자신이나 르노도상 심사위원들에게 화낼 것이라 자신의 책 출간을 거절한 출판사들을 비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아마존은 작가들에게 기존 출판사들보다 더욱 유연한 계약 조건을 제시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 내용에 대해 선입견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르노도상 심사위원 가운데 한 명인 작가 파트릭 베송은 ‘방드 드 프랑세’에 대해 “독창적이고 흥미롭고 신선하다”고 후보 선정 이유를 밝히면서 이 책이 아마존을 통해 자가 출간된 책이라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했으며 자신은 오로지 책의 내용에만 관심 있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스의 서점업계 보호장치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비교적 탄탄합니다. 책 가격이 고정돼 있으며 할인도 5%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지난 2013년에는 아마존 같은 유통업체가 책 5% 할인과 무료 배송을 묶어서 소비자에게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통과시켰죠.

영국에는 독립 책방이 1000곳 남짓이지만 프랑스에는 3000여개나 있습니다. 프랑스는 전자책 시장도 크지 않죠. 그런데 점점 아마존 같은 온라인 서점이나 전자책 등의 존재감이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인 로랑 비네는 “서점업계로서는 ‘방드 드 프랑세’가 자가 출판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마존을 통해 출판된 것이 문제인 것”이라며 “프랑스에서 문학상은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문제는 판돈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프랑스는 다른 나라보다 책 정책이 깐깐하고 사람들의 종이책 애착이 크기 때문에 전자책 시장은 미미하고 서점들의 업황이 괜찮지만 이 같은 건전한 생태계는 부서지기 쉽고 아마존은 분명히 가장 큰 위협”이라며 “르노도의 ‘방드 드 프랑세’ 후보 선정 행보는 아마존의 ‘트로이 목마’(적을 속이는 치명적인 전략)처럼 비춰졌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프랑스 서점업계의 미국 아마존에 대한 반발은 작년 프랑스 칸 영화제가 미국 온라인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를 공식경쟁부문에 초청한 것을 두고 프랑스 영화관 배급업자들이 치열하게 반발했던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프랑스는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지 3년이 지나야 다른 플랫폼에서 틀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논란 이후 칸 측은 넷플릭스 영화는 더 이상 칸 영화제에서 상영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르노도 상 수상작은 11월 7일 결정됩니다. 르노도 상 후보작 선정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