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안갯속 방위산업]②브렉시트에 휘청?

by이준기 기자
2017.12.05 06:00:00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영국은 방위산업 분야에서 전통적인 강국입니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사기술 분야에서 엄청난 혁신을 이뤄냈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으로 인해 제조업, 금융업 등 산업 전반이 휘청이는 가운데 방산 분야는 중동 및 세계 곳곳의 갈등에 힘입어 선전하면서 효자산업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방위산업의 오늘과 내일을 2회에 걸쳐 짚어봅니다.(편집자주)

BAE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출처=텔레그라프
무기 등 군사 물자나 안보 기술 등을 개발 및 제조, 판매하는 방위산업은 영국의 효자 산업입니다. 영국 국제통상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영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해외에 전투기 등을 포함한 군수품을 가장 많이 내다 판 국가입니다. 영국은 작년 유럽연합(EU)을 탈퇴(Brexit·브렉시트) 하기로 결정하면서 현재 유럽과의 결별 협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U와의 결별협상이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있으면서 약속했던 재정부담금, 영국 내 EU 국민들의 권리 보장, EU에 속한 아일랜드공화국과 영국령인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 등을 두고 지지부진하면서 영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브렉시트 이후 EU와의 새로운 무역협정에 관해서는 아직 협상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은 EU 이외의 다른 주요 교역국과의 개별적인 무역협정 체결에도 속도를 못 내고 있죠. 그나마 무역협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방산 분야만이 영국이 전통 강국의 면모를 내세워 유일하게 선전하고 있고요.

이민정 통신원
영국은 올 들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7개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단교를 당하면서 중동에서 고립된 카타르에 전투기 수십대를 파는 한편 카타르의 적국인 사우디와도 전투기 판매 논의를 이어가는 등 중동의 갈등을 기회로 주머니를 두둑이 채우고 있습니다. 영국 제조업, 금융업, 농산물 분야 등이 브렉시트 등으로 인해 EU 단일시장 접근 권리 박탈, 일손 부족과 인재 유출, EU 보조금 중지 전망 등으로 휘청이고 있는 가운데 방산 산업은 여전히 호조를 보이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순항하는 방산산업이 브렉시트 후폭풍을 피해 계속해서 굳건함을 보일 수 있느냐는 것이죠.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최근 영국의 최대 방산 제조업체인 BAE시스템즈는 인력 2000여명을 감축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회사는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과 핵잠수함을 만드는 회사죠. 총 감축 인력 가운데 군사 항공우주 사업부문에서 향후 3년간 1400명을 감축하고 잠수함 사업부문에서 375명, 사이버정보 사업부문에서 150명을 감축할 계획입니다. 매니저급을 포함한 생산라인의 인력 전반에서 감원을 실시한다는 방침이죠. 이 회사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8만31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만 3만4600명을 고용한 거대 기업입니다. 인력감축은 주로 영국 본부와 생산 기지 등에서 단행될 예정이고요.

불황을 모르던 영국 최대 방산업체 BAE가 왜 대규모 인력 감원이라는 칼을 빼들었을까요? BAE측은 사업 효율화와 비용 감축 등을 위해 인력 감원 등 전반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올 들어 BAE의 전투기 타이푼이 라이벌 프랑스 다쏘에비에이션이 만든 라파엘에 비해 구매 계약이 주춤하는 등 타이푼의 수요가 줄어드는 것도BAE 인력 감원 결정에 한몫 했다는 풀이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BAE의 가장 큰 고객인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에 드는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국방 예산을 줄이면서 국가적으로 차세대 전투기 개발 및 지원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BAE보다 생산 단가가 싼 미국 보잉 등으로부터 전투기 등을 구입하면서 등을 돌린 것이 직격타라는 평가입니다. 그러면서 BAE노동조합도 회사를 비난하기보다는 영국 정부를 비난하는 분위기고요.

방산분야 전문 인력 등 대규모 인력 감축이 앞으로 영국이 차세대 전투기를 자체적으로 디자인하고, 개발하고, 생산하는 역량을 잃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 BAE는 유로파이터 타이푼 이후 계획하는 차세대 전투기 프로그램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요. 앞서 프랑스와 독일은 올여름 새로운 전투기 생산에 합작하기로 손을 맞잡았는데 브렉시트 여파 때문인지 영국은 이 프로그램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영국의 효자산업이던 방산산업도 브렉시트 후폭풍은 피해 가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영국이 더이상 방위산업 강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