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민구 기자
2016.09.09 06:00:00
잠시 시계추를 49년 전으로 돌려보자.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1967년 이색적인 실험을 했다. 그는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주(州)의 주도(州都) 오마하에 거주하는 주민 160명을 대상으로 동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살고있는 한 주식중개인에게 지인을 통해 소화물을 전달하도록 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모험이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평균 5.5명의 손을 거치면서 소화물이 오마하에서 보스턴 주식중개인에게 도착했다. 밀그램 교수는 그의 실험을 토대로 6사람만 거치면 누구나 아는 관계라는 ‘6단계 분리 이론’(six degrees of separation)을 발표했다. 세상이 좁다는 말을 실감하기에 충분한 결과다.
그러나 이같은 기법도 이제는 박물관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써야 하는 신세가 됐다. 최근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등장해 굳이 발품을 팔아 최소한 6명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으로 몇 번만 클릭하면 지구촌 사람들과 인맥을 순식간에 쌓는 초접촉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초접촉사회를 이끄는 SNS는 ‘양날의 칼’이다. 한 개인의 선행이 인터넷을 타고 전세계에 퍼져 지구촌을 감동시키는 화젯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만행은 네티즌으로부터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마치 사방에 깔린 어둠 속에서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그대로 황천길로 향할지 모르는 두려움을 묘사한 조선시대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처럼 영광과 굴욕의 경계선은 한 끗 차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리콜 결정은 초접촉사회에서 기업이 어떻게 위기대응을 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줬다. 갤럭시노트7 폭발 사례가 일부 SNS를 뜨겁게 달궜지만 삼성으로서는 제조물책임법(PL법)에 따라 노트7 배터리만 리콜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다. 배터리 발화 문제가 보고된 것도 국내외에서 35건에 불과한 점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황이었다.
그런데 삼성전자 수뇌부는 노트7 250만대 전량을 리콜하는 ‘통 큰’ 결단을 내렸다. 삼성으로서는 리콜 비용이 1조5000억원을 훌쩍 뛰어넘지만 삼성이 지니고 있는 브랜드값인 ‘평판 비용’(reputation cost)에 더 무게를 뒀다. 평판비용은 단기적 이득만을 노리다 기업이 지불해야 할 손실과 기회비용을 모두 포함한 경영 개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회사에 불리한 내용을 언론보다 앞서 발표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에 따른 온갖 오해와 제품 판매 차질 등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이 위기상항에서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대응하지 않을 경우 결국 언론의 뭇매를 맞는 ‘투명성의 역설’(The paradox of transparency)을 겪게 된다.
과거 폭스바겐과 도요타자동차가 제품 결함이 있지만 리콜하지 않고 버티다 언론 보도로 신뢰도를 크게 훼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삼성의 경쟁업체 애플도 안테나 수신 감도가 떨어지는 이른바 ‘안테나 게이트’를 소비자 과실로 돌려 비난의 중심에 서지 않았는가. 이에 비해 삼성전자는 이번 노트7 리콜 파문에도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해법은 평판경영이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인 삼성전자는 이번 리콜 파문이 ‘제품 불량률 제로’로 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트트에서 혁신을 강조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선보인 지 23년이 지났다. 인공지능(AI), 드론 등 제4차산업혁명의 거센 파고(波高)를 이겨내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의 과감한 기술혁신 선언이 기대된다.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