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덫에 걸린 경제]②말로만 경제…실상은 '그랜드플랜' 실종

by김정남 기자
2016.03.29 05:00:20

여야, ''대한민국 그랜드플랜'' 공약 찾기 힘들어
"힘 좀 있다는 정치인은 경제문제 관심도 없어"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누리과정(만 3~5세 무상 보육·교육) 파동은 부실한 선거공약이 국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누리과정은 지난 2012년 총선이 낳은 ‘히트상품’ 중 하나였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너도나도 무상복지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렇게 0~2세 표준보육과정에 3~5세 무상보육·교육이 합쳐졌다. 경제 문제의 최대 고질병으로 꼽히는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는 당찬 의지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디테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추후 세금이 더 걷힐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공약이지만 경기침체 암초를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는 세수(稅收) 감소에 따른 기관간 재원 ‘핑퐁게임’이었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들에 돌아갔다.

4년이 흐른 지금, ‘차라리 지난 총선이 나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번 총선은 더 최악이라는 혹평이다. 여야가 대한민국호(號)의 현재에 대한 고민 자체를 하지 않고 있어서다. 무상복지 같은 시대를 상징할 만한 키워드는 자취를 감췄다. 세계 각국이 경기침체를 벗고자 통화전쟁을 벌이고 미래 먹거리 찾기에 혈안인데도, 우리만 유독 멈춰있는 것이다. ‘총선 리스크’의 덫이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알파고의 등장은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눈 앞에 온 것”이라면서도 “각 정당의 미래 경제에 대한 이해 수준은 실망스럽다”고 했다.

실제 이데일리가 살펴본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의 주요 공약에서 ‘대한민국 그랜드플랜’은 찾기 어려웠다.

새누리당이 맨 먼저 내세운 경제공약은 U턴기업 지원이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이미 국회에 관련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들이 쌓여있다. 새누리당이 이 공약으로 내세운 매년 해외법인 10% U턴과 일자리 50만개 창출은 허황되다는 지적이 많다. 산업계 한 인사는 “기업이 설령 국내에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노동단가가 더 높은데 해외 고용 수준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만연한 저성장 시대 때 필요한 정치권 리더십은 ‘미니 맥스’라고 조언한다. 정치권으로 국민으로 하여금 기대수준을 낮추도록 설득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뒤 비용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의 공약은 가능한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더 부풀린 ‘희망모음집’ 수준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김 교수는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게다가 새누리당의 공약들은 재원조달방안마저 없다. 전체적으로 연 1조1000억원, 추후 4년간 4조40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연도별 예산 증가분을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이 역시 어렵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법에 의해 자동으로 느는 (복지 고용 등) 의무지출은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정부 재량으로 쓰는 (SOC 등) 재량지출은 미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쓸 돈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기초연금 30만원 지원 공약도 실현이 쉽지 않다. 현재 기초연금은 소득하위 노인 70%에 10만~20만원 차등 지급되고 있다. 이걸 올해부터 20만원 균등 지급으로 바꾸고, 2018년까지 3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새롭지 않다. 여야가 이미 지난 2013~2014년 정치 공방을 벌였던 사안이다.

더민주가 밝힌 추가 소요 재원은 연 6조4000억원. 문제는 조달 방안이 두루뭉술하다는 것이다. 재정개혁 복지개혁 조세개혁을 하겠다는 계획인데, 하나하나가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사안이다. 정가 한 관계자는 “더민주 의원들도 엄연히 지역구가 있는데 세출예산을 줄일 수 있겠느냐”고 했다. 지역구 의원이 지역구 민원예산을 줄이는 건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당은 미래형 신성장산업 육성 공약이 눈에 띈다. 생명과학 에너지 신소재산업 등을 특정하기도 했다. 다만 신성장산업센터를 설립해 장기 계획을 추진한다는 정도의 이행계획 밖에 없다. 필요한 재원도 밝히지 않았다.

한 원로 경제학자는 “미래의 큰 그림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건 정부당국이나 학계가 아니라 정치가 해줘야 한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다”면서 “그런데 힘 좀 있다는 정치인들은 그런 건 관심도 없지 않느냐”고 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긴축 기조로 돌아섰고 유럽과 일본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성장률 목표를 내렸는데 이마저도 달성할지 의구심이 있다”면서 “비빌 언덕이 과거 위기 때보다 더 없는데도 정치는 경제의 발목만 잡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