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맘 다이어리] 임산부는 배려받고 싶습니다
by송이라 기자
2015.04.19 08:00:00
임신 시기마다 느끼는 변화 달라..3등분해서 배려
지하철 속 임산부는 괴롭다..전용석·배지 '무용지물'
|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 스티커가 부착된 모습 (출처=보건복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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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오늘은 오랜만에 예전 기억을 되살려 임산부 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벌써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모든게 신기하면서도 버거웠던 시기였다.
여성은 임신이란 걸 아는 순간부터 아기를 낳을 때까지는 몸과 마음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다. 내 몸 안에 뛰는 심장이 2개라는 사실만큼 큰 변화가 또 어디있으랴. 갑자기 쏟아지는 잠을 주체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이럴 때 직장 동료 혹은 주변 사람들은 당황한다. 뭔가 배려는 해야겠는데 방법은 잘 모르겠고, 유난떤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임산부는 배려해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임신 기간은 40주, 즉 열 달이다. 이 시기를 세 부분으로 나누면 첫 14주까지가 초기, 15~28기까지가 중기, 29주~출산까지가 후기다.
각각의 시기별로 임산부의 신체 및 정신적 변화는 판이하다. 때문에 시기별 특징을 잘 알아두면 주변의 임산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나도 임신 전에는 관심도 없었다)
우선 초기는 주변인들이 느낄만한 신체의 변화는 거의 없다. 하지만 임산부에겐 가장 힘든 시기가 바로 초기다. 개인차가 크지만 대게 초기 때 입덧을 한다. (물론 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알겠지만) 입덧은 술 왕창 먹은 다음날 메스꺼운 숙취가 석 달 정도 가는 것이라 상상하면 된다. 정말 괴롭다. 안 먹으면 토할 것 같고 먹으면 진짜 토한다.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데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하다.
초기 임산부의 직장 상사라면 이 시기 동안 부하직원은 잠시 없다고 생각하는게 속 편하다. 게다가 이 시기엔 이상하게 자도 자도 졸리다. 내가 입사하고 처음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임신 11주때였다.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토하면서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야…’라고 느껴더랬다.
암울한 초기가 지나면 갑자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중기가 온다. 배도 살짝 나오지만 본격적으로 나오는건 5개월이 지난 후라 자세히 보지 않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심신이 어느 정도 임신한 내 자신에 익숙해지면서 식욕이 마구 당긴다. 이 시기의 친구를 만난다면 맛집을 안내해주는 게 최고다. 먹는 양도 어마어마해서 남자들도 종종 놀란다.
임신 후기는 몸이 말을 안 듣는다. 30주가 지나면서부터 배가 쑥쑥 나오기 시작하는데 감당이 안 된다. 잘 때 바로 누워서 잘 수가 없다. 온갖 장기가 눌려서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다리에 쥐가 나서 살 수가 없다. 하루 빨리 아기를 낳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만삭의 여성이 주변에 있다면 튼살크림을 선물해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배가 나오면서 뱃살이 지렁이 기어가듯 트기 때문이다.
임신 8개월까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했던 내게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노약자석에 가면 지팡이 든 노인들이 한 소리하고, 일반석에 서 있으면 다들 스마트폰 쳐다보느라 누구도 임산부엔 관심이 없다. 보건복지부가 2013년부터 지하철 각 차량당 두 석씩 임산부석 스티커를 붙였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건소에서 나눠주는 임산부 배지는 임산부조차도 잘 모른다. 이 배지를 가방에 걸고 다니면 배가 많이 안 나온 초기 임산부도 자리를 양보받을 수 있다는건데 실제 지하철 내 임산부는 괴롭기만 하다.
지하철과 멀미는 어울리지 않지만 임신 초기에 나는 지하철에서 몇 번을 내렸다 탔는지 모른다. 계속 토할 것 같고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자리 비켜주는 이 하나 없다. 정말 이마에 ‘입덧중’이라고 써붙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마 내게 자리를 내줬던 사람들을 꼽자면 20대의 모범생으로 보였던 학생들과 젊은 직장 여성들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배 나온 채로 서있는게 괜시리 머쓱해 자리에 아예 없는 문가에 엉거주춤 서 있을 때가 더 많았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에서 임산부에 대한 배려는 의식 문제다. 노약자석에 젊은 여자가 앉아있으면 윽박지르기 전에 임산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해보고, 일반석에도 괴로워보이는 젊은 아줌마(?)들에겐 자리를 내어주는게 어떨까. 임산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건 두 명을 편안케 해 준다는걸 잊지 말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