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올인' 한미약품, 국산신약 수출 잔혹사 끊을까

by천승현 기자
2015.03.20 03:00:00

릴리와 7700억 기술 수출 계약..업계 최대 규모
계약금만 5천만달러..실속도 단연 앞서
4년간 영업익 2.7배 R&D 투입 노력 결실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한미약품이 글로벌제약사와 업계 최대 규모의 수출계약을 성사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몇 년간 ‘빠듯한 살림’에도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가 결실을 맺고 있다는 평가다. 자금력에 비해 연구개발 분야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쏟아붓는다는 우려도 말끔히 해소됐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무대에서 국산신약의 잔혹사가 끝나는 계기가 될지 기대하는 분위기다.

19일 한미약품(128940)은 일라이릴리와 총 6억9000만달러(약 7700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다. 임상2상시험 진입을 앞둔 면역질환 치료제 ‘HM71224’를 릴리가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지역에서 개발·판매하는 조건이다.

이번 계약은 국내 제약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전까지는 지난 2007년 동화약품(000020)이 미국 P&G와 체결한 5억달러 규모의 골다공증치료제 기술수출이 최대 규모로 꼽혔다. 녹십자(006280)는 지난 2010년 미국 ASD헬스케어와 총 4억8000만달러 규모의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과 ‘그린진에프’의 수출 양해각서를 맺은 바 있다. 이마저도 동화약품은 이후 계약이 백지화됐고, 녹십자는 아직 판매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다.

한미약품의 이번 계약은 질적인 측면에서도 실속을 챙겼다. 우선 계약금으로만 5000만달러(약 557억원)를 받는다. 지난해 영업이익 345억원보다 많은 금액을 상반기내에 받게 된다.

이 제품이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거쳐 최종 승인까지 받게 되면 6억4000만달러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승인 이후 판매가 전혀 이뤄지지 않더라도 6억9000만달러를 가져가는 셈이다. 통상 지금까지 국내제약사들의 수출 계약 규모가 판매 추정치로 책정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HM71224는 우리 몸의 B 림프구 활성화 신호에 관련된 효소 ‘BTK’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새로운 면역질환 표적치료제다”면서 “면역질환 분야에 강점을 가진 릴리가 이 기전의 약물의 시장성을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만약 상업화 이후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면 한미약품의 수익은 더욱 커진다. 한미약품은 10% 이상의 판매로열티를 받기로 했는데, 기존의 수출 계약과 비교해도 좋은 조건이다. 지난해 국산신약 중 두 번째로 미국 시장에 입성한 동아에스티의 ‘시벡스트로’는 판매금의 5~7%를 받는다.

한미약품 연구개발비 투자 현황
한미약품의 수출 성과는 과감한 R&D 투자의 결실로 평가된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매출의 20%인 1525억원을 R&D 분야에 쏟아부었다. 연구비 규모나 매출 대비 비율 모두 국내업체 중 1위다.

2014년 3분기 누계 주요제약사 연구개발비 현황(단위: 억원, %)
한미약품은 지난 2011년부터 4년간 총 4433억원을 R&D비용으로 썼다. 같은 기간 벌어들인 영업이익 1657억원보다 2배 이상 많은 금액을 차기 먹거리 개발에 투입한 셈이다.

기술력도 복제약(제네릭)부터 개량신약, 신약 등으로 순차적으로 발전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한미약품은 가장 빨리 제네릭을 발매하는 전략으로 외형을 확대해왔다. 이후 고혈압약 ‘아모디핀’·‘아모잘탄’ 등 기존 제품을 개선한 개량신약으로 새로운 시장을 두드렸고, 지난 몇 년간은 신약 개발에만 전념했다. 현재 개발 중인 신약은 26개에 달한다.

사실 한미약품은 해외시장에서 시행착오도 숱하게 겪었다. 고혈압복합제 ‘아모잘탄’을 미국 머크와의 수출 계약을 통해 전 세계 51개국에 수출 중이지만 아직 ‘대박’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2013년 항궤양제 ‘에소메졸’은 국산 개량신약 중 처음으로 미국 시장에 발매됐지만 당초 기대만큼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신약물질이 판매로 이어질 때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번 계약이 최종적으로 결실을 맺을 때까지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동화약품(골다공증약), 일양약품(위궤양약) 등은 다국적제약사에 신약 기술을 수출했다가 변수로 삐걱댔던 경험이 있다.

개발 기간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유사한 경쟁약물이 등장할 수 있고 임상시험 도중 부작용과 같은 돌발 변수도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광약품(B형간염약)과 LG생명과학(C형간염약)은 수출한 신약이 해외 임상시험 도중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해외시장 진출을 접어야했다.

정윤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지원실장은 “한미약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R&D 분야에 투자한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면서 “굵직한 신약 성과가 나오면 글로벌 시장 50위권내에 포함되는 ‘스타 제약사’도 배출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 실장은 “내수 시장은 한계가 있어 해외시장 진출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해외 파트너를 선정할 때 개발·판매권을 모두 넘기는 것보다는 공동개발·연구를 통해 리스크를 공유하면서 판매 마진도 더 챙길 수 있는 전략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