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노믹스' 부동산 흐름 바꿨다.. 5년만에 '집값 역전'

by박종오 기자
2014.09.26 07:00:00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25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등용로의 주택가. 약 10m 간격으로 세워진 전봇대마다 손바닥만한 홍보 전단이 붙어 있었다. 종이에는 “청약 저축·예금 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개인이 보유한 1순위 청약통장을 웃돈을 주고 사들여 신규 분양아파트에 청약하려는 것이다. 아파트 당첨만 되면 분양권 프리미엄(웃돈)이 붙던 부동산시장 호황기에나 성행했던 불법 거래다.

인근 D공인 관계자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진 뒤 이 동네도 매기가 돌고 청약통장까지 암암리에 거래되는 등 지난 2년 새 최고의 약발을 받고 있다”며 “집주인들은 잔뜩 힘을 주고 구매자들은 ‘지금 집 사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착시 효과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시장을 관통한 큰 흐름이 바뀌고 있다. 서울·수도권 ‘침체’, 지방 ‘활기’라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에 중·고층 아파트가 늘어서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수도권 약세(弱勢), 지방 강세(强勢)’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시장의 지형은 이렇게 요약된다. 그런데 이 공식이 5년 만에 깨질 조짐이다. 지방의 집값 상승세가 한풀 꺾인 사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주택시장이 깊은 침체의 골을 벗어나고 있어서다. 이른바 ‘역전 현상’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서울·수도권 아파트값은 지난달 말보다 0.22% 상승했다. 전달 집값 변동률(0.12%)의 약 2배로, 대구·부산 등 5개 광역시(0.19%)와 기타 지방(0.13%) 가격 상승 폭을 웃돈 것이다. 서울·수도권 매매가가 지방·광역시보다 많이 오른 것은 2009년 9월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감정원 조사에서도 서울·수도권 아파트값 오름 폭이 8월부터 커지더니 현재는 지방의 1.6배를 넘어섰다. 임채우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지난 3년여간 호황을 누렸던 지방은 주택 공급 증가 여파로 최근 집값 상승세가 둔화하는 반면, 서울·수도권은 정부의 연이은 규제 완화에 힘입어 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별 아파트값 변동률 (단위=%, 자료=KB국민은행)
주택 거래도 지역별 온도 차가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수도권의 주택 매매 거래량은 전달보다 5.5%(1807건) 많은 3만2730건을 기록하며 두 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서는 1만5000건 가량 늘어난 규모다. 지방 거래량(4만1436가구)이 한 달 새 6.1%(2684가구)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집계를 보면 이달 들어 25일까지 서울 아파트 6435채(하루 평균 257건)가 매매 거래됐다. 작년 동월(4653건) 거래량은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 매일 전달(220건)보다 15% 이상 많은 아파트가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노원구 중계동 노원사랑공인의 소미영 대표는 “전세에서 매매로 갈아타는 수요뿐 아니라 재건축 사업 기대감에 따른 투자 문의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지역별 희비가 갈린 원인으로 우선 달라진 주택 수급 여건이 꼽힌다. 지방은 금융위기 이후 새 아파트 공급이 뜸했다. 이 때문에 집을 사려는 대기 수요가 쌓이고 기존 집값도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신규 분양이 잇따르다보니 수요가 점차 소진되고 투자 열기도 가라앉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침체했던 서울·수도권 시장은 최근 전셋값 상승 압박에 정부 정책 효과까지 더해졌다. 최경환 경제팀이 7월부터 DTI(총부채상환비율)·LTV(주택담보인정비율) 등 금융 규제 완화와 주택 공급 축소 및 재건축 활성화 등 수도권 주택시장을 겨냥한 부양책을 연이어 내놓자 가을 이사철을 기점으로 주택 구매 심리가 개선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다 보니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시장 과열 조짐마저 감지된다. 서울 송파구 마천동 ‘금호어울림1차’ 전용 102㎡형 아파트는 지난 22일 법원 경매에서 감정가(4억7000만원)보다 비싼 4억8315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13명이 무더기 응찰해 벌어진 전형적인 고가 낙찰이다. 부동산 경매정보업체인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이달 현재 서울·수도권 경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격 비율)은 87.7%를 기록했다. 3개월 연속 상승세다.

청약 시장 분위기도 예년과 다르다. 부동산114가 집계한 결과, 올해 하반기(7~9월) 서울에서 신규 분양한 아파트의 1~3순위 청약 경쟁률은 평균 14.4대 1이었다. 전체 17개 시·도 중 대구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상반기(1~6월)에 세종시 등에 이어 5번째로 저조한 실적(1.8대 1)을 보인 것과 상반된 결과다. 이달 위례신도시에서 분양하는 ‘위례자이’ 아파트 인근 S공인 관계자는 “요즘 분양 당첨만 되면 프리미엄(웃돈)이 수 천 만원씩 붙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하루 200~300통씩 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며 “정부가 앞으로 더이상 신도시 개발을 않겠다고 하자 희소성이 높아져 청약 열기가 더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역전 현상이 굳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지방에 새 아파트가 대거 쏟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1~2012년 10만가구를 밑돌던 지방의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은 지난해 10만9505가구, 올해 16만600가구로 대폭 증가했다. 내년에도 14만893가구가 입주를 앞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방은 전반적인 물량 압박으로 예전 같은 호황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서울·수도권은 공급 과잉 우려가 큰 외곽 지역이 아닌 도심 재개발·재건축 위주로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역별 주택 매매 거래량과 입주 물량 (단위=건·가구, 자료=국토교통부·부동산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