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 국내 영화상들 결과가 비슷한 이유

by문화부 기자
2013.11.22 07:00:00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연말이 다가오면서 대종상을 필두로 영화평론가협회상, 청룡영화상 등 각종 시상식의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영화상 발표를 보면서 문득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경우만 봐도 대종상은 ‘관상’과 ‘7번방의 선물’, 영화평론가협회상은 ‘관상’과 ‘설국열차’가 휩쓸었습니다. 수상한 영화들은 하나같이 700만 이상 1000만의 관객을 모은 대규모 흥행작들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심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참고로 외국의 대표적인 영화상을 살펴볼까요. 미국의 아카데미 영화상입니다. 2012년에는 ‘아르고’, 2011년에는 ‘아티스트’가 수상했습니다. 또 영국의 아카데미(BAFTA)는 2013년 ‘아르고’, 2012년 ‘아티스트’, 프랑스 세자르상은 2012년 ‘아무르’, 2011년 ‘아티스트’, 미국 NY비평가상은 2012년 ‘제로 다크 서티’, 2011년 ‘아티스트’, LA비평가상은 2012년 ‘아무르’, 2011년 ‘더 디센던츠’에게 영광을 안겼습니다. 대체로 ‘아무르’ ‘아티스트’가 휩쓸었군요. 이 두 영화는 한국에서 모두 개봉했지만 아마 거의 본 관객들이 없을 겁니다. 흥행에 대참패를 했다는 것이지요.

그건 미국이나 프랑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이언맨’ ‘레미제라블’ 같은 대규모 흥행작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흥행대작을 뽑은 사례는 없습니다. 오죽하면 ‘타이타닉’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을 때 이변이 났다고 했을까요. 하지만 자국 영화제에서 흥행영화에 상을 몰아주는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흥행성은 약하지만 캐서린 비글로의 ‘허트 로커’ ‘제로 다크 서티’ 등이 영화제에서 연이어 수상함으로써 흥행 제왕 제임스 캐머런보다 아내였던 캐서린 비글로가 예술성에서 한 수 위라고 언론에서 격찬했습니다.

흥행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한 영화에 몰아주지 않는 게 서구 영화제의 관행입니다. 영화제의 목표는 오락성보다는 새로운 가치관을 높게 평가한다는 기준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또 관객들의 평가와 전문가들의 평가를 다르게 갖고 가겠다는 운영방침이 작용한 것이지요.



한국의 심사위원들이 예술성 평가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선 영화제마다 흥행영화가 석권하는 현상이 벌어질까요. 심사위원들조차도 스크린을 독과점하는 소수의 영화 외에는 다양한 영화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해에 한국영화는 150편 내외가 상영됩니다. 매일 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 이상, 하루에 5회도 틀어주지 않고 최소 1주일도 상영하지 않는 많은 훌륭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극장의 교차상영 방식 때문입니다. 멀티플렉스의 많은 스크린 중 하나에 두 개 이상의 영화를 배치해서 상영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오전 10시에 A라는 영화를, 낮 12시에 B라는 영화를, 오후 2시에 다시 A라는 영화를 상영하는 편법 개봉입니다. 이 방식은 소비자 관객의 영화관람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악질적인 방식입니다. 순전히 극장의 영업이익만을 위해 취해지는 방식이지요. 영화제 심사기간 동안 추천되는 주목할 만한 영화 리스트에도 그런 다양한 영화들은 상당히 빠져 있습니다.

국내 영화제수상에서도 봤듯이 극장이 이윤추구를 위해 행하는 스크린독과점 현상은 영화제 수상마저도 획일화시키고, 새로운 한국영화가 발견되고 평가되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평론가나 전문가들에 의해 조명되어야 할 미래의 훌륭한 한국영화들이 얼마나 많이 매장되고 사라지는 것입니까. 스크린독과점과 각종 불공정을 규제하지 않으면 다양한 영화들은 사라질 것이고 소수 대작 오락영화만 남아 한국영화랍시고 존재하겠지요. 김기덕이나 홍상수 같은 미래의 재능있는 감독들은 외국으로 떠날지 모릅니다. 예술성과 국제성이 사멸된 불모의 한국영화판에다가 정부가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다시 그 명성을 회복하기란 힘들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