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한 뙈기' 없이, 조감도 '한 장'으로 시작하는 지주택

by전재욱 기자
2024.06.13 05:00:00

[빚 좋은 개살구 지주택]②
''토지 매입'' 기대로 시작하는 지주택 사업의 구조적 한계는
기대와 현실의 괴리..알박기로 좌초한 ''트리마제 교훈''
고비용 비효율적인 사업구조..조합원 부담은 ''눈덩이''
무리한 사업 이끌려고 무리수 등장.....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현재 지방의 한 지역주택조합(지주택)은 시공사로 A 건설사를, 브랜드로 B 건설사를 각각 내세워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다. 실제로 A사는 시공사가 아니고, B사는 이 사업장과 아무 관계가 없다. 훗날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허위 광고다. A사는 지주택 측에 사실 관계를 바로잡으라고 요청했지만, 이날까지 바뀐 게 없다. B사 관계자는 “시공사 허위 광고는 봤어도 브랜드까지 몰래 써서 조합원을 모집하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지주택은 처음부터 땅과 돈이 없이 집을 짓겠다는 기대로 시작한다. 땅과 돈이 있어도 버거워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니 사업 단계마다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주택 사업의 태생적 한계로 지적된다.

12일 부동산 개발업계에 따르면 지역주택조합을 설립하려면 사업부지 토지사용권원 80%(혹은 토지소유권 15%)를 확보해야 한다. 토지사용권원은 토지 소유자로부터 받은 토지사용승낙서를 의미한다.

토지 확보 작업은 지주택 사업 전부로 꼽힌다. 우선 사업지 일대에 터를 잡아 살아온 이들이 땅을 팔고 떠나달라는 요구에 응하기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처럼 토지 소유주가 조합원이 되면 수월할 텐데, 여의찮다. 지주택 조합원 요건은 크게 대상지 △세대주 △무주택자(85㎡ 이하 1채는 가능)△6개월 이상 거주자(투기과열지구는 1년)이다. 무주택자 요건이 상당수 결격사유로 작용한다. 애초 토지사용을 승낙했던 이들도 훗날 마음을 바꾸거나, 매매가격을 높게 부르는 것도 변수다. 이른바 ‘알박기’다.

‘서울숲 트리마제’(서울 성동구 성수동)는 ‘토지가 전부’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애초 2004년 설립한 성수1지역주택조합은 90% 넘게 토지를 확보했다가 나머지를 못 채우고 좌절했다. 알박기 영향이 컸다. 결국 조합원은 투자금과 분양권을 모두 잃었다. 이후 두산중공업이 해당 토지를 매입해 트리마제를 준공했다.

이 사건 이후 소수(알박기) 탓에 다수(조합원) 이익이 침해받는 구조가 개선됐다. 토지사용권 95%를 확보하면 나머지를 수용(주택법 22조 매도 청구권)할 수 있다. 그러나 법과 현실은 괴리가 있다. 매도청구는 상대방 토지를 ‘시가’로 매수하는 것인데, 시가가 얼마인지가 분쟁 대상이다.

김경식 법률사무소 심재 변호사는 “토지사용권한과 토지 시가 감정 결과 탓에 조합과 토지주 사이 소송이 벌어지기 일쑤”라며 “재판으로 가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년이 흐르기 때문에 그만큼 지주택 사업성은 악화한다”고 말했다.

토지주를 설득하는 제일의 방법은 ‘값을 후하게 쳐주는 것’이다. ‘실탄’(사업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초기 사업비는 조합원을 모집해 갹출 받은 투자비가 주요 재원이다. 토지권원 과반을 확보한 때부터 조합원 모집이 이뤄진다. 투자금은 예상 분담금의 10%(계약금) 정도와 별도로 업무 추진비가 붙어서 계산된다.

이렇게 모인 투자금이 오롯이 토지 매입에 쓰이지 않아서 문제다. 우선 업무대행사가 초기 지출(투자)한 비용을 먼저 회수(수수료)하고, 회사 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사업비로 충당한다. 각종 비용을 제외하면 토지를 사들일 자금 여력이 달릴 수밖에 없다.

지주택 사업에 밝은 관계자는 “예상 분양가가 8억원이라면 가입비 8000만원과 업무추진비 2000만원 내외를 포함해 1억원 정도가 초기 투자비용”이라며 “여기서 토지 매입에 쓰이는 비중은 3분의 1도 안된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고비용일 수밖에 없는 지주택 구조도 타격이 크다. 예컨대 대부분 지주택은 부동산신탁회사에 사업비를 맡겨 자금 운용을 위탁한다. 자금을 투명하게 운용하고 있다는 홍보 성격이 크다. 여기서 발생하는 신탁 수수료는 일반 정비사업과 비교해 “몇 배 비싸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조합원 돈을 써서 또 다른 조합원의 신뢰를 사는 것이다.

수위권 신탁사 관계자는 “사실상 지주택은 신탁사를 얼굴마담으로 세워서 조합원을 모집하려는 것이고, 신탁사로서는 리스크가 큰 사업에 이름을 빌려주기에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비를 늘리려면 기존 조합원의 추가 분담금이 필요하고, 부담이 늘어난 조합원은 사업에 회의적이게 되고, 조합 이탈과 조합비 환수를 둘러싼 갈등이 악순환처럼 뒤따른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사업을 끌고 가려면 신규 조합원을 더 모집해야 한다. 이러면서 각종 무리수가 등장한다. 앞서 A 시공사의 B 브랜드를 갖다 쓴 지주택 사업장이 사례다. 두 회사가 반발하고 있는데도 해당 지주택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A 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하고 B 건설사 브랜드를 단지명에 적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겹친 고금리와 고물가 여파는 지주택에 치명타다. 늘어난 금융 조달 비용과 유지 비용을 감내하고 시공사를 찾더라도 공사비 문턱을 넘어야 한다. 최근 서울 지역 공사는 3.3㎡당 1000만원을 넘기기 예사다. 사업성이 악화한 조합은 해산하고 남은 자산을 배분하는 것도 방법으로 거론된다.

서울 지역주택조합장은 “큰 손해를 막기 위해 작은 손해를 확정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며 “사업을 끌어봤자 조합원 부담과 조합 비용만 늘어나는 게 지금 지주택이 마주한 현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