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괴롭다”…총알받이 내몰린 기동대원들
by조민정 기자
2023.05.24 06:00:00
지방기동대까지 주말마다 6천명 집회관리 동원
인력 줄었는데…“무조건 많이 배치 비효율”
욕설·비난 기본…“이러려고 경찰 일 하나”
“집시 현장 면책 준들, 업무강도 안 바뀌어”
“경찰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지자체 나서야”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김영은·이영민 수습기자] 대형 스피커에서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과 얼굴이 절로 찌푸려지는 욕설을 듣고도 묵묵히 집회 장소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바로 경찰이다. 최근엔 주말마다 서울 도심 집회·시위 관리에 서울경찰청 기동대 4600여명에 지방에서도 1200명가량이 동원되고 있다.
의무경찰(의경) 폐지로 인력은 줄었는데 대응해야 할 집회·시위는 줄지 않으니 살인적인 업무강도에 시달릴 수밖에 없지만, 이들은 고충을 털어놓는 것조차 눈치봐야 한다. 23일 이데일리가 만난 현장 경찰들은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집회·시위현장 공무집행의 면책보단 효율적인 경력 운용, 지자체와 정부 관할부처의 대응 협력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국에 방문한 지난 7일 기시다 총리의 숙소로 알려진 서울 시내 한 호텔 주위에 경찰들이 배치돼 있다.(사진=연합뉴스) |
|
현장 경찰은 최근 집회·시위 대응이 힘들어진 이유로 △진압보단 ‘관리’ 체제의 비효율적 운영 △맞불집회 성행, 유튜버 등 관리 대상 증가 △무너진 공권력 등을 꼽았다.
먼저는 물대포, 차벽 등으로 강경 대응하던 과거와 달리 ‘지키는’ 식으로 집회에 대응하다 보니 일단 경력만 앞세워 머릿수로 승부 보려는 윗선의 지시가 힘들다고 했다. 서울에서 대화경찰로 근무하는 D경찰관은 “경찰 간부들이 집회 때마다 기동경찰을 뿌리고 보는 경향이 있다”며 “사안의 중요도 파악이 덜 되니까 버스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기동경찰도 생기고 비효율적”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일선서의 E경찰은 “예전엔 한 단체가 집회하면 그것만 관리했지만 지금은 그 주최 측에 맞불을 놓는 다른 단체, 이걸 생중계하러 오는 유튜버들, 지역주민, 인근 자영업자와 행인들 불만까지 다 경찰이 케어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을 향한 멸시와 비난은 정신적 피로도까지 높인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기동대 F경찰관은 “이번 주에만 시청에서 30회 근무했는데 요즘 집회가 많아져서 피로하다”며 “최선을 다해 일하는데 우리를 적대적인 세력으로 보고, 시청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욕설을 할 땐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중구 청계천에서 근무하던 G경찰관은 “오늘 아침에도 ‘왜 바쁜데 길을 막냐’며 짜증과 화를 내뿜는 남성이 있었다”며 “운전하던 시민에게도 욕설을 자주 듣는데 힘이 든다”고 한숨 쉬었다.
일부 시민들도 경찰의 고충에 공감하고 있다. 용산구 전쟁기념관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H씨는 “경찰은 공무원이라 어떻게 대응할 수 없으니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며 “시위자들이 경찰을 무시하는 것 같은데, 욕을 해도 듣고만 있는 경찰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고 했다.
현장경찰은 집회·시위현장 공무집행에 면책을 준다해도 집회·시위자들에 강경 대응하기 어려운데다, 간절히 원하는 업무강도를 낮추는 데엔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경찰서 소속 I경찰관은 “노조가 요구사항이 있어 집회할 땐 고용노동부에서 나오는데 정보관에게 편승해 집회 인원을 묻는 것에 그친다”며 “적극적으로 근로감독관을 투입하고 현장에 관심을 가져야 갈등이 풀리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어 “경찰에게만 모든 걸 맡기지 말고 지자체와 정부 관련 부서가 나서서 질서 관리를 돕는 협력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