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법체계 그대로...재난피해 사각지대에 놓인 소상공인

by김경은 기자
2022.09.14 06:10:00

포항 오천시장 점포당 피해액 수천만원…지원금은 고작 200만원
자연재난 피해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소상공인
재난안전법 농업사회 근간 법체계 이어와 현실반영 못해

[포항=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대목 앞이라 물건만 1000만원 넘게 들여놨는데 다 버리고 냉장고 하나 남았습니더. 이 자리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했는데 이런 물난리는 생전 처음이지요. 신고해도 정부서 나오는 돈은 200만원이 전부라던데 막막하지요.”

태풍 ‘힌남노’의 직격탄을 맞은 경북 포항의 오천시장에서 35년째 장사를 하고있는 임화수(70세)씨는 추석연휴에도 장에 나와 태풍 피해를 수습했지만, 언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하다.

코로나19 피해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소상공인들에게 집중호우 피해까지 덮쳤다. 농경사회가 기반이었던 1970년대 풍수해대책법을 근간으로 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이 사회경제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소상공인은 재난피해 사각지대에 놓였다. 소상공인 지원대책을 담은 법개정안은 국회에 발목이 묶였고, 소상공인들은 이번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전망이다.

13일 행정안전부 복구대책지원본부에 따르면 지난 6일 상륙해 경상권에 막대한 피해를 남긴 태풍 ‘힌남노’로 인한 사유재산 피해는 현재까지 상가·공장 3000여건, 주택침수 3500건으로 집계됐다. 추석연휴로 응급복구율은 절반을 조금 넘긴 59%다.

특히 피해가 심했던 포항 오천시장 115개 점포는 명절 대목을 맞은 추석 전날도 여전히 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폐허처럼 변해있었다. 텅 빈 상점을 뒤로하고 임시 가림막을 만들어 생업을 이어가는 상점도 있었지만, 대부분 문을 닫았다.

안병한(61세) 오천시장상인회 회장은 “하필 명절 대목앞에 이런 물난리가 나서 기자재를 포함해 피해액이 점포당 4000만~5000만원은 된다.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아야 할 것 같다”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천시장은 인근 지역에 비해 지대가 낮은데다 냉천이 범람해 삽시간에 물이 사람 키만큼 들어찼다.

지난달 수도권에 이어 올해 발생한 집중호우는 우리나라의 배수시설을 초과하는 시우량(시간당 강수량)을 기록하면서 도심의 생활터전까지 넘봤다.

우리나라의 하수관로 설계기준은 30년(지선), 50년(간선) 빈도다. 즉 최대 50년에 한번 정도 올 수 있는 시우량에 견딜 수 있는 배수시설 설계 기준에서 100년에 한번 올 만한 시우량을 연이어 기록하면서 도심의 배수시설이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특히 저지대 등 ‘위험지역’의 경우 하수관로가 받을 수 있는 용량을 훨씬 초과하면서 하천의 범람까지 이어져 인명 피해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재난안전법상 소상공인 시설은 자연재난 구제 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있고, 정책보험인 재난보험 가입률도 저조해 100곳 중 93곳은 자연재해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돼있는 실정이다. 기후변화로 태풍과 집중호우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재난예방 시설 정비는 물론 재난복구지원에 대한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 등에 내린 집중호우로 소상공인에 지급된 재난지원금 지급액은 279억원이었다. 피해 신고가 접수된 상가는 1만3900곳에 달한다. 상가 1곳당 평균 약 200만원의 지원금이 지급된 셈이다. 소상공인 상가 및 공장에 대한 피해액은 자연재난 피해액에 산정조차되지 않는다.

이는 현행 재난안전법이 재난 피해 복구 지원과 관련해선 주거용 건축물의 복구비와 농·어업 시설의 피해 복구를 위한 지원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시설은 정책자금 융자 등 간접 지원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영업 관련 시설이나 건물, 동산 등의 피해 복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지원에 대한 근거는 부재하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더라도 마찬가지다. 행안부의 자연재난 조사 및 복구계획 훈령에 따르면 피해 시설 복구와 피해주민 생계안정, 피해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한 직접 현금 지원으로는 △주거용 건축물 복구비 △농업·어업·임업·염생산업 시설복구 지원 △공공시설 복구사업비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현행 ‘재난안전법’이 1967년 제정된 풍수해대책법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자연재난에 대한 지원 근거 체계는 1970년대 우리사회가 농어업 중심의 사회였을 당시에 만들어, 경제구조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역대 최장 장마와 태풍 피해를 입은 2020년 이후 소상공인 재난 지원 현실화를 위한 ‘재난안전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현재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재난지원금 규정은 2005년 개정된 이후 17년째 제자리다. 이재민들은 200만원의 재난지원금과 생계급여, 복구비 등을 합쳐 최대 5000만원까지 지원할 수 있으나, 소상공인 피해는 200만원의 재난지원금 외의 별도 복구비 지원 규정이 마련돼있지 않다. 지난달 수도권 폭우에는 중앙정부 재난지원금 200만원 외에 특별 교부금 200만원을 편성하면서 침수 이상 피해 소상공인에 400만원이 이례적으로 지급됐다. 여기에 개별 지자체에 따라 100만원씩 추가지원이 이뤄진 경우 총 500만원의 지급결정이 이뤄졌다.

소상공인 지원근거법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재난안전법의 근간이 ‘풍수해대책법’과 ‘재난관리법’이기 때문이다. 풍수해대책법은 농·임·어업과 주택, 공공시설에 대한 복구지원을 다루고 있으며, 재난관리법은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등을 계기로 마련된 인적재난 관리대책이다. 아울러 ‘자연재난’ 대책의 굵직한 변화의 계기를 낳은 사건들 역시 △1994년 일산 제방붕괴 △1998년 지리산 폭우 △2002년 태풍 ‘루사’ △2010년 우면산 사태 등으로 주로 주택침수나 인명, 농작물 피해, 도심 배수시설 정비 등에 집중돼왔다.

남윤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법 개정이 미비한 것은 그동안 소상공인 재난지원에 대한 사회적 공감 부족 등이 근본 원인”이라며 “재난안전법에서 지원하고 있는 농·어업과 비교해 소상공인은 사업체수, 종사자수, 매출액 등에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클 뿐만 아니라 소상공인 보호는 헌법상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행안부 담당 관계자는 “수도권 집중호우와 태풍 힌남노를 통해 소상공인 재난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피해 현황을 보면 지원 규정이 마련될 필요가 충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