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OECD경쟁위서 망신 당한 공정위…日 ACP 배워야

by조용석 기자
2022.05.10 06:15:00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답을 찾다] 공정경쟁정책 ⑥
日 경쟁당국 두 차례 시도 끝 2020년 12월 도입
세부절차는 EU 모델 모방…사내변호사는 ACP 제외
"글로벌 스탠더드 맞추려 첫 삽 뜬 日…공정위와 비교"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공지유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쟁위원회 의장단에 속한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정기회의에서 그야말로 대망신을 당했다. 경쟁법 집행을 선도한다고 인정 받아 의장단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함께 OECD 36개국 중 ‘유이’하게 방어권 보장절차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의뢰인 비밀보호제도(Attorney-Client Privilege·ACP)가 없었기 때문이다.

폴란드 등 일부 동유럽 국가도 자체 ACP 제도는 없었지만 이들은 유럽연합(EU)에 속해 있어서 같은 제도를 사용한다고 주장하면서 빠졌다. 한국과 같은 처지인 일본도 곧 ACP를 도입할 예정이라며 피해 갔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OECD 본부 전경(사진 = 로이터)


반면 공정위는 `한국은 비밀보호제도는 없지만 이를 존중(Respect)한다`는 성명을 내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내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해 발표하지 못했다. 공정위는 2020년 12월 일본마저 ACP를 제한적으로 도입한 탓에 이제 비밀보호제도가 없는 유일한 OECD 국가가 됐다.

OECD 사례에서 뚜렷이 드러난 것처럼 경쟁법 집행 과정에서 ACP를 보장하는 것은 거스르기 어려운 글로벌 스탠더드다. 또 미국과 영국과 같은 이른바 판례 중심의 영미법계 국가뿐 아니라 독일이나 프랑스 등 대륙법계 국가의 경쟁당국도 모두 ACP 제도를 인정하는 점을 고려하면 법체계가 비밀보호제도 도입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은 대륙법계 국가로 분류된다.

공정위는 ACP 도입이 어려운 이유로 법 체계상 형법과 민법 등에 먼저 적용한 후에 이후 행정조사를 하는 공정위가 도입하는 것이 순서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은 형법에 ACP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형법 등에 ACP를 보장하지 않는 같은 법체계를 가진 일본 경쟁당국의 도입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효성 변호사의 2020년 논문 ‘국내 경쟁법 절차에 비밀유지권 도입 검토(일본의 제도를 중심으로)’ 등에 따르면 일본 공정취인위원회(한국 공정위격)는 ‘공취위 심사에 대한 규칙’ 및 ‘비밀유지권 지침’을 통해 ACP를 도입했다. 일본은 2009년과 2013년 두 차례 사적독점금지법(한국 공정거래법) 개정과정에서 ACP 도입이 언급됐으나 모두 실패했다. 결국 2019년에야 규칙 및 지침을 통해 도입에 성공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ACP 보호대상은 ‘카르텔(담합) 사건 리니언시를 위한 법률자문’으로 다소 좁다. 또 행정조사에만 적용하고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공취위의 범칙조사절차의 경우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는다. 형법이 ACP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개입하는 범칙조사절차에 이를 도입할 경우 법체계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논문을 쓴 김 변호사에 따르면 일본 법조계도 애초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등 경쟁법 전반에 대한 ACP 인정을 요구했으나 일본 경쟁당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세부절차는 EU 제도를 많이 참조했다. 신청인이 비밀유지권 적용을 요청하면 먼저 조사공무원이 확인하고, 제3자(판별관)를 통해 검토하며, 비밀유지권 적용에 대한 최종 판단에 이의가 있으면 법원에 불복할 수 있는 절차는 일본과 EU가 모두 동일하다. 미국도 ACP 자료 검토를 위해 제3자를 지정하고 불복 시 법원의 판단을 구한다는 점은 같다.

일본 경쟁당국은 사내변호사와의 법률자문을 포함해 ACP를 널리 보호하는 미국과 달리 일본 변호사법에 따른 변호사로 제한했다. EU 경쟁당국이 EU 회원국 변호사 자격을 갖춘 자와 그 의뢰인 사이 의사교환만 ACP 보호대상으로 인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일본과 EU 모두 사내변호사의 자문은 비밀보호 유지대상에서 제외한다.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일본 경쟁당국 ACP 제도가 매우 제한적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첫 삽을 뜬 것”이라며 “법체계를 이유로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있는 공정위와는 비교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