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만에 중대재해 8건 "하루하루 살얼음판"

by함지현 기자
2022.02.25 06:05:05

[중대재해법 한달]②사나흘에 한 번꼴 재해 발생
"아침마다 안전교육 실시하지만 매일이 초비상"
투자·고용 위축 우려…대기업보다 중소기업 대응 어려워
"기업 엄격한 규제뿐 아니라 노동자 책임 의식도 필요"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함지현 이후섭 송승현 기자] “공장에 워낙 위험요소가 많은 만큼 매일 아침마다 직원들과의 미팅을 통해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비상인 상황입니다.”(인천 자동차 정비 A사 대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한 달 만에 중소제조업, 건설, 화학 등 업종 가리지 않고 사건이 터지면서 경영 활동이 크게 위축하는 모습이다.

24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법 시행 이후 이날까지 중대재해법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사례는 총 8건이다. 첫 사고는 설 명절 연휴 첫날인 지난달 29일 발생했다. 바로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 사고다.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에서 골재 채취 작업 중 토사 붕괴로 중장비 운전원 3명이 사망했다. 고용노동부는 삼표산업 본사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이종신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고용부는 삼표산업 전국 사업장에 대한 특별감독도 돌입했다.

이어 이달 8일에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건물 신축 현장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설치 업체 소속작업자 2명은 지상부 엘리베이터 내부에서 일하던 중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면서 지상 12층에서 지하 5층으로 떨어졌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진 두 작업자는 끝내 숨졌다. 고용부는 사고 당일 작업 중지를 명령했고 시공업체인 요진건설산업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10일에는 경남 창원시 전자제품업체 두성산업에서 제품 세척공정 중 트리클로로메탄에 의한 급성 중독자가 16명 발생했다. 중대재해법 이후 첫 직업성 질병자가 적용된 사례다. 고용부는 두성산업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고 유해물질 제조업체 및 유통업체 등 2개소에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지난 11일에는 전남 여수시 화치동 소재 여천NCC 3공장에서 열교환기 기밀시험 중 열교환기 덮개가 이탈해 근로자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건설이 시공 중인 세종~포천 고속도로 14공구에서도 지난 16일 근로자 1명이 고속도로 건설 현장의 개구부를 열다 추락해 사망했다.

아울러 19일에는 경남 고성군 삼강에스앤씨에서 근무하던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선박 컨테이너 난간 수리 작업을 하기 위해 작업용 가스 호스를 운반하던 중 10m가량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이틀 뒤인 21일에는 쌍용C&E 동해공장 시설물 관련 건설공사 중 시공사 직원이 3m 정도의 높이에서 추락, 병원으로 이송한 뒤 수술을 받던 도중 사망했다.



가장 최근인 23일에는 제주시 제주대 내 기숙사 철거 현장에서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굴착기 기사이자 철거 업체 대표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나흘에 한 번꼴로 사고가 터지고, 처벌 또한 강력하다 보니 경영계 활동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중대재해법상 종사자가 사망하면 사업주에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법인은 50억원 이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기업 규제 부담지수 조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3.48)이 1위로 나타났다. 이어 ‘법인세’(3.36), ‘주52시간제’(3.30), ‘최저임금’(3.26) 등의 순이었다. 부담지수 1점은 ‘부담 없음’, 5점은 ‘매우 부담’을 의미한다.

경총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과도한 처벌수준과 법률 규정의 불명확성으로 의무준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기업조차도 처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무리한 경영책임자 수사와 같이 과도한 형벌을 부과하는 문제점을 합리적으로 개정하는 입법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위험이 많은 분야에 투자를 회피하게 되고 외국인 투자 역시 같은 이유로 위축될 것”이라며 “투자 위축과 채용 감소 등을 포함한 현황을 파악하면서 면책 규정 도입과 같은 대응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응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의 부담이 더욱 가중하는 모습이다. 자금 여력이 부족해 안전 관리를 위한 투자가 어렵고 관련 인력을 충원하기도 힘들어서다. 일부 대기업의 위험 부담을 중소기업이 떠안는 ‘위험의 외주화’가 일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의 책임에 더해 노동자들의 책임 의식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보원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인력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기업에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노동자들도 스스로 책임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과 더불어 노동자 과실도 인정하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현장에 휴대폰이나 불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정부가 지침을 내리거나 법으로 막아야 중대 재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