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플레 장기 악순환 이미 시작…금융시장 충격 대비할 때"
by김정남 기자
2021.08.13 06:00:20
[석학 인터뷰]②
손성원 미국 로욜라메리마운트대 석좌교수
"임금 상승세 우려…비용 인플레 소용돌이 촉발"
"국채금리 낮아…테이퍼링과 함께 상승 불가피"
"韓경제, 잠재성장률 제고 위해 생산성 높여야"
"(의대 등) 인재 쏠림, 일본처럼 침체 올 수도"
|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석좌교수는 “한국의 기본소득 논쟁은 정치가들이 정치적인 목적에서 하는 것”이라며 “경제적인 차원에서 하는 논쟁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사진=손성원 교수 제공) |
|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세계 경제 중심인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심상치 않다. 최근 두 달 연속(6~7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 5.4%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이후 13년간 볼 수 없었던 수치다. 빠른 긴축으로 접어들 경우 금융시장에 ‘인플레이션의 역습’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실물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근래 미국 전역의 식당, 술집 등은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웃돈을 얹어줘도 일하겠다는 이들이 없다는 게 기자가 만나본 여러 자영업자들의 토로다.
“임금 같은 노동비용이 한 번 오르면 물건값을 올려야 합니다. 한 곳에서 인상하면 또 다른 곳에서 임금을 인상해야 해요. 그러면 다시 상품가격이 상승합니다. 이같은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재미 석학인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 겸 SS이코노믹스 대표는 11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시장 예상보다 빠른) 내년 말부터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손 교수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시절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당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과 수시로 상의했을 정도로 경제 분석에 밝은 인사다.
손 교수는 특히 “바이든 정부는 인플레이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증세에 나서고 규제를 강화하면서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방향과) 반대로 가고 있다”며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결국 경제 성장에 있어 정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물가 충격 우려가 상당하다.
△그렇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전망을 항상 잘하는 게 아니다. (연준은 지난 6월 당시 올해 미국의 PCE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3.4%로 제시했는데, 이는 불과 석달 전인 3월 전망치보다 무려 1.0%포인트 높여 잡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주장처럼 금방 없어지는 게 아니다. (1970~1980년대 같은) 두자릿수 이상 상승률까지는 아니겠지만, 3~5% 정도로 오는 2023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상 오를 가능성도 농후하다.
-왜 그런가.
△가장 우려하는 게 임금 인상률이 높다는 것이다. 치폴레(멕시칸 패스트푸드 체인점) 같은 주요 기업들이 임금을 올리는데 소비자들은 별다른 저항이 없는 상태다. 그렇게 (다른 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직적인) 노동비용이 한 번 오르면 상품값은 상승할 수밖에 없고, 이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가능성이 있다. 노동비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소용돌이(spiral)는 이미 시작했다.
-다른 이유도 있나.
△주거 임대료를 유심히 보고 있다. 주거비용은 CPI 내에서 3분의1 비중을 차지한다. 임대료가 이미 오르고 있는데, 앞으로 더 급등할 것으로 본다. (미국 아파트 시장분석업체 리얼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6월 공동주택 임대료는 1년 전보다 14.6% 올라 역대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또 하나의 이유가 달러화 공급이다. 과거 밀턴 프리드먼이 했던 말이 ‘오늘 찍어낸 돈은 2년 후에 인플레이션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물가 이슈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 문제다.
-일부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고 불확실성이 커지면 결국 금리를 올려야 한다. 그러면 기업들이 투자를 꺼려 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최근 바이든 정부는 각종 세율을 올리고 규제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해서 호황을 누리는 경제를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먼 얘기는 아니다.
-연준의 긴축 스케줄은 어떻게 될까.
△올해 겨울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을 시작할 것이다. 델타 변이 변수가 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1년 정도 테이퍼링을 한 후 내년 말부터는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 가능성 등으로) 기준금리를 빠르게 여러번 올리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미국 국채금리가 예상 밖 하락하고 있다.
△10년물 국채금리 1.2% 아래로 내려간 건 일시적이다. 인플레이션은 장기적인 문제다. 테이퍼링을 시작하면 국채금리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1.2%는 너무 많이 하락한 것이다. 뉴욕 증시 역시 버블 상태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향후 2~3년간 인플레이션 이어지면 증시에 충격이 올 수 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을 사실상 예고했다.
△적절한 대응이다. 한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물가 상승 우려가 생각보다 크다. 선제적으로 조금씩 기준금리를 올려 둬야 한다.
-재미 석학으로서 한국 경제를 진단한다면.
△잠재성장률을 제고하는 게 중요하다. 과거 백악관에서 중점적으로 했던 일이 그것이다. 잠재성장률을 좌우하는 변수는 노동 공급과 생산성이다. 한국은 고령화 때문에 노동 공급은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생산성을 높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경제 효율성을 높이려면 결국 기업이 활력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규제를 풀고 세율을 낮춰서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 상황이지 않나.
-한국은 대선 국면에서 기본소득이 논쟁거리로 부상했다.
△따지고 보면 기본소득은 진보 진영에서 나온 게 아니다. 보수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밀턴 프리드먼이 처음 화두를 던졌다. 프리드먼은 (기존 복지 제도를 모두 없앤 후)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도입하는 건 괜찮다고 본다. (프리드먼이 말한 기본소득은 한국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 진보 진영에서 제시한 기본소득 정책과는 차이가 크다.)
-지금 기본소득 논쟁은 어떻게 보나.
△정치가들이 정치적인 목적에서 하는 논쟁이다. 경제적인 차원에서 하는 논쟁이 아니다.
-차기 한국 정부에게 조언을 한다면.
△미국은 최고 인재들이 창업에 적극 나서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전세계 시가총액 10위 안에 들어 있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테슬라 등이 다 그렇게 해서 탄생했고, 지금도 또 계속 나오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국 전체를 실리콘밸리처럼 만드는 데 경제정책의 초점을 둬야 한다.
-요즘 한국 인재들은 의과대로 몰린다고 한다.
△일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만 해도 모두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특유의 폐쇄성이 강했던 탓에) 경기 침체가 수십년 장기화하고 있다. (지금처럼 인재가 특정 분야에 몰리면) 한국이 일본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창조하고 혁신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마인드를 바꿔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정책적으로 노력(개혁)해야 하는 것이다.
△1944년생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 △피츠버그대 경제학 박사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수석이코노미스트 △웰스파고 수석부행장 △LA한미은행 행장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포에버21 부회장 △로욜라메리마운트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