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대형마트보다 면세점이 유독 더 어려운 이유

by함지현 기자
2020.05.04 05:30:00

3월 매출 전년 대비 반토막…백화점·마트보다 감소폭 커
해외 입출국 얼어붙고 규제도 받아…공항 임대료도 부담
공항 임대료 대폭 감면 필요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이 평소에 비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함지현 기자]코로나19로 인해 주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모두 타격을 입은 가운데 유독 면세점의 어려움이 부각 되고 있다.

면세점은 사업 운영에 여러 제한이 있는 데다 고객 역시 해외 여행객으로 한정돼 있어 운신의 폭이 좁다. 더욱이 공항 면세점 같은 경우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크고, 직매입을 할 수밖에 없는 사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재고마저 떠안아야 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주요 오프라인 유통업체 중 면세점의 타격이 가장 큰 모습이다. 한국면세점협회 조사 결과 지난 3월 기준 면세점 매출액은 1조 87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9.8% 역신장하며 반토막 수준으로 감소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 기준 같은 기간 대형마트가 13.8%, 백화점이 40.3% 역신장한 것과 비교해도 더 많이 줄었다.

특히 면세점 매출은 지난 2월보다 악화했다. 당시 면세점 매출은 1조 102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7% 줄었다.

면세점이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사업의 근간이 되는 해외 입출국이 얼어붙어서다. 한국관광공사 집계 결과 지난 2월 입국한 외래객은 68만 5212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43% 급감했다. 하루 20만 명에 달하던 인천공항 이용객 수도 현재 40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유일한 구매 고객인 입출국 수요가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매출도 뚝 떨어진 것이다.

특히 면세점은 유통업계에서도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어려움이 가중하더라도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업계를 더욱 울상 짓게 만든다.

대형마트가 영업일 등 제한을 받기는 한다. 그러나 면세점은 점포 개설부터 특허권을 받아야 하고, 주요 채널 중 하나인 공항에서는 매출이 나오지 않더라도 입찰 당시 제시한 임대료를 꾸준히 납부해야 한다. 물건을 살 수 있는 고객도 한정적이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한 외화획득과 관광 진흥을 위해 관세 및 내국세 등 과세가 면제된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이에 규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사업의 기초가 되는 여행업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인 만큼 한시적으로나마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 공항 임대료 감면이 방법으로 제시된다. 대표적인 곳이 인천국제공항이다. 현재 대기업 중 롯데면세점의 인천국제공항 월 임대료는 200억원, 신라면세점 280억원, 신세계면세점은 360억원으로 추정된다. 매출이 ‘0원’이더라도 내야 하는 최소보장액이다.



정부에서는 현재의 어려움을 고려해 공항 입점 대형·중견 면세점 임대료를 오는 8월까지 20% 감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인천공항 측에서 내년도 임대료 산정 시 이번 감면은 고려하지 않고 이전 임대료를 적용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업계 반발에 직면했다. 인천공항 임대료는 여객 인원 변동에 따라 최대 9%까지 높이거나 낮출 수 있는데, 출·입국객 급감으로 인한 내년도 임대료 감면을 사전에 차단한 셈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해외 사례처럼 매출이나 고객 수와 연동한 임대료 책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지난 2월부터 고정 임대료를 50% 감면하고 여객 수가 대폭 감소한 T2, T3 일부 매장은 지난달 말까지 임대료를 면제해줬다.

미국의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과 덴버 국제공항, 마이애미 국제공항 등 주요 공항들도 매출 연동제를 도입했다. 특히 마이애미 국제공항은 이 조치로 785억원의 수익 감소가 예상되지만 어려움을 겪는 공항 내 상업시설 지원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

또 언급되는 방법은 재고 물품의 내수 유통이다. 면세점은 물건을 공급하는 브랜드 측의 요구와 매출 원가 절감 등의 이유로 직접 물건을 구매해 놓고 판매하는 ‘직매입’ 형태의 영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지금처럼 영업이 부진할 경우 재고가 쌓이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면세점협회와 주요 면세점들은 관세청에 면세물품의 국내 통관이 가능하도록 보세물품 판매 규정을 완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내국인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관세청은 재고 면세품을 수입 통관한 뒤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6개월 이상 장기재고만 허용하고 면세품의 국내유통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수입물품과 동일하게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관세청은 면세점 재고 물품은 수입통관 이후 유통업체를 통해 아웃렛 등에서 판매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이번 조치로 면세점이 과다 보유하고 있는 장기재고의 20% 소진을 가정할 경우 추가적으로 약 1600억원의 유동성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면세품의 국내 유통은 전례 없는 상황인 만큼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다. 면세 가격 판매가 아니라 세금이 붙게 되는 만큼 가격 경쟁력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와 명품 브랜드에 대한 설득 등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 길이 막힌 데다 제품을 팔 수 있는 방법 자체도 제한적이라 면세점이 큰 위기에 내몰렸다”며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는 만큼 정부와 공항 등 외부에서 융통성 있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