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권 “툰베리 시위는 세계적 흐름…기후변화 대비해야”
by최훈길 기자
2019.07.30 05:00:00
[인터뷰]주OECD 대한민국대표부 대사
“16세 소녀 기후변화 대응 촉구, 세계적 흐름”
“온실가스 감축, 친환경 산업구조 전환 필요”
“수소경제·디지털·정년연장을 미래 아젠다로”
“미래 공직자는 변화·혁신·개방·유연성 필요”
| 고형권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한민국대표부 대사.[사진=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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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툰베리의 1인 시위는 유럽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유럽에선 녹색당이 각국 총선에서 2~3위를 차지하는 등 약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
고형권(55)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한민국대표부 대사는 최근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앞서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지난해 8월 “지금의 기후변화 문제는 어른들 책임”이라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 이에 동조한 스웨덴,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곳곳의 학생들이 등교 거부 등을 통해 정부에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했다.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툰베리는 현재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올랐다.
작년 12월까지 기획재정부 1차관으로 경제정책을 총괄한 고 대사는 올해 3월 대사에 부임해 이 같은 OECD 현안을 주시해왔다. 고 대사는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한국에도 영향을 주는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정부가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 대사는 “온실가스 감축과 친환경 산업구조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며 “탄소세를 붙여야 한다는 주장이 한국에서도 현실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에서 도입 중인 탄소세는 석탄·석유 등 온실가스를 발생하는 화석에너지 사용량에 따라 기업·소비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의 쟁점이 될 정도로 기후변화 이슈에 대한 유럽 사회 관심은 크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을 중심으로 EU국가들은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탄소 배출을 대폭 줄이고 있다. 최근 유럽의 이상기후로 온난화에 대한 유럽의 우려도 커져, 온실가스 감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는 9월23일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 세계정상회담에선 과거보다 강화된 환경 규제가 논의될 수 있다.
고 대사는 “우리나라가 수소경제를 준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고 대사는 지난해 범정부 혁신성장본부장을 맡으면서 ‘수소경제 로드맵’을 마련하는데 관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수소경제는 에너지원을 석탄과 석유에서 수소로 바꾸는 산업구조의 혁명적 변화”라며 이 로드맵을 발표했다.
고 대사는 수소경제 관련해 “수소가 환경 측면에서 이상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지만 아직은 경제성이 낮다”며 “생산·저장·수송·소비까지 각 단계별로 기술적 도전 과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가 손 놓고 아무 것도 안 하면 있으면 안 된다”며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는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 대사는 경제정책에 대해선 “우리 정부 정책이 세계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고 어떤 것은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며 장기적 안목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성장률만 당장 높이려고 하면 훗날 부작용이 많이 생길 수 있다”며 “경기관리를 하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 대사는 체질 개선과 관련한 미래 아젠다로 △일자리에 영향을 주는 디지털 변화에 따른 대비 △노인 빈곤에 대비한 정년연장을 언급했다. 그는 “정년연장이 청년 취업, 기업 부담 등 여러 복합한 문제가 관련돼 있다. 임금이 계속 오르는 현행 호봉제를 유지한 채 정년연장을 하기는 힘들다”면서도 “정년연장은 노인 생계를 해결하면서 미래 불안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고 대사는 후배 공직자들에게는 “성(城)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여는 자는 흥한다”는 칭기즈칸이 남긴 격언을 전했다.
고 대사는 “길을 연다는 것은 변화, 혁신, 개방, 유연한 자세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공직자들도 좀 더 개방되고 유연한 자세로 임하는 게 필요하다”며 “기재부 등 부처 안에서 ‘예산실로 갈까, 정책국으로 갈까’하는 생각만 하지 말고, 넓게 널리 보고 아주 다른 생각도 해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해외 인사들을 만나보면 한국을 ‘위대한 나라’라고 부를 정도로 평가가 좋다. 삼성·현대차 등 세계적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점, 디지털 강국, 교육열, 연구개발(R&D) 투자 등을 부러워하고 있다. 특히 올해 5월 열린 OECD 각료이사회는 ‘한국 홍보회의’가 될 정도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세대(5G) 기술발전 관련해 명쾌하게 선도발언을 했다. 민원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은 디지털경제정책위원회 의장으로서 인공지능(AI) 권고문 채택을 이끌어냈다. 이는 디지털과 관련한 최초의 국제합의였다.
해외에 와서 보니 우리 정부 정책이 세계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고 어떤 것은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위상이 대외적으로 높다. 많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내부의 만족도는 높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불안·걱정도 많다. 이 이유는 각 분야가 좀 더 균형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세상 변화에 대한 준비가 덜 됐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OECD는 정책과 지식의 광산이다. 이를 자세히 보면 OECD 국가들도 우리 정부와 비슷한 정책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민하는 정책은 소득분배의 양극화, 일자리 문제, 고령화와 기후변화, 디지털 혁명, 생산성의 문제 등이다. △내가 제일 하고 싶은 말은 ‘어렵지만 경제주체들이 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더 잘해보자’, ‘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 혁신과 포용이 필요하다.
△세계경제는 금년 하반기부터 점진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나,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다. 그 향방을 단언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중 무역마찰에 대해 유럽연합(EU), 일본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중국경제가 예상외로 급속히 둔화된다거나 노딜 브렉시트(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것)가 현실화될 경우 전세계 성장·교역이 위축될 수 있다. 미국, EU는 금리인하를 실행하거나 검토 중이다. 이는 주요국가들 간의 관세율 인상 경쟁 등과 함께 환율절하 경쟁 등으로 무역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일부 선진국들의 주택가격이 이미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고 있어 금리 인하가 자산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
△한마디로 어렵다. 높은 대외 의존도를 감안할 때 세계경제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 설명하기 어렵다. 추경 편성 등 정부대책에 따른 내수 확충, 미중 무역협상 진전, 반도체 수요 회복 등이 경기회복에 영향을 줄 것이다.
다만 성장률만 당장 높이려고 하면 훗날 부작용이 많이 생길 수 있다. 밖은 겨울인데 우리만 여름이 되자며 불피우면, 나중에 정말 불이 필요할 때 뗄감이 없어진다. 경기관리를 하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서비스업·중소기업의 낮은 노동생산성, 새로운 먹거리, 계층·지역 간 소득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디지털 변화에 대한 대비다. OECD는 앞으로 10년 내 기존 일자리 중 46%가 디지털화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지면 직업훈련도 잘해야 하지만 기초교육을 바꿔야 한다. 정답이라는 게 변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년 문제다. 우리 사회의 행복도를 가장 낮추는 게 노인 빈곤이다.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베이비붐 현상에 따라 출생자가 꾸준히 늘면서 1970년에 태어난 인구가 100만명 가량이었다. 이들이 65세가 되는 해는 2035년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2035년까지 노인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셈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직업이 없거나 연금을 못 받는 인구일 수 있다. 현재도 이 같은 상황에 처한 65세를 넘은 노인들이 많다. 가계소득동향조사에서 1분위(하위 20%) 소득분배가 좋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노인 인구 때문이다. 시장에 맡겨놔서는 소득분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재정 지원만으로 이 문제를 풀 순 없다.
정년을 높이는 게 좋은 방안이다. 물론 청년 취업, 기업 부담 등 여러 복합한 문제가 관련돼 있다. 임금이 계속 오르는 현행 호봉제를 유지한 채 정년연장을 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일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노인들에게 문을 열어줘야 한다. 이들이 정년 때문에 옷을 벗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것은 노인들의 생계를 해결하면서 우리 미래의 불안을 해소하는 길이다.
△OECD가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 중 하나가 기후변화 대응이다. 온실가스 감축과 친환경 산업구조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OECD 이사회를 하면 기후변화 대응은 유럽에서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다.
△앞으로 탄소세를 붙여야 한다는 주장이 한국에서도 현실화될 것이다. 친환경 금융투자를 많이 하도록 하는 ‘그린 파이낸스’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북유럽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기후변화 대응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 여학생은 ‘그동안 어른들은 뭘 하고 있었나, 우리더러 공부하라고 하는데 기후변화가 이대로 가면 몇십년 뒤에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1인 시위를 했다. 최근 유럽의 폭염, 이상기후와 맞물린 툰베리의 1인시위는 유럽사회의 패션처럼 주목받고 있다. 유럽에선 녹색당이 2~3위를 차지하는 등 약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한국에도 영향을 주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미세먼지가 심각하다. 최근 몇년 새 폭염도 심했다.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현상을 주목하고 친환경 정책으로 가야 한다. △기획재정부 차관 당시 혁신성장본부장을 겸임하면서 많은 전문가들과 수소경제 관련 토론을 했다. 당시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 ‘수소혁명’을 읽고 많은 영감을 받았다. 수소가 환경 측면에서 이상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수소 생산을 석탄 등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어서 아직은 진정한 청정에너지는 아니지만, 재생에너지를 통해 수소를 생산하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다만 생산·저장·수송·소비까지 기존 연료보다 아직은 경제성이 낮다. 각 단계별로 기술적 도전 과제도 있다. 수소경제가 향후 어떻게 될지는 지금으로선 누구도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손 놓고 아무 것도 안 하면 있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는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수소경제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성을 쌓는다는 것은 고정관념, 칸막이, 폐쇄성, 경직성을 뜻한다. 길을 연다는 것은 변화, 혁신, 개방, 유연한 자세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공직자들도 좀 더 개방되고 유연한 자세로 임하는 게 필요하다. 기재부 등 부처 안에서 ‘예산실로 갈까, 정책국으로 갈까’하는 생각만 하지 말고, 넓게 널리 보고 아주 다른 생각도 해봤으면 한다.
몽골 재무부 자문관으로 파견됐을 당시 우리나라도 유목민의 DNA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나라와 몽골이 언어, 문화, 역사 등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이런 역동성 있는 우리 민족을 울타리 안에 가둬놓으면 서로 싸움만 하고 자멸한다. 성을 쌓고 안에서만 싸우지 말길 당부한다.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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