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위에 부엌 있는 ‘아파트’.. 이상하지 않아?

by이정현 기자
2019.06.21 06:00:00

공연 ‘포스트 아파트’의 한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아파트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부엌 위에 부엌이 있고 문을 닫으면 우리집, 문을 열면 다른 이와 공유하는 공간이 펼쳐진다. 옹기종기 모두가 함께 살지만 고독사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곳. 한국에 사는 절반가량이 거주하는 이 공간을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내달 6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포스트 아파트’는 연극이자 무용 퍼포먼스다. 출연자와 관객의 선을 지운 마당극이자 전시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이기도 하다. 2019 두산인문극장의 주제인 ‘아파트’의 하나인 이 공연에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는 연극인, 건축가, 사운드디자이너, 영화인, 배우, 무용가의 시선이 담겼다.

관객은 아파트라는 평범한 공간을 형상화한 무대에 뚝 떨어진다. 흔하디흔한 아파트 베란다부터 샤워실, 놀이터의 흙과 생기 없이 가공된 풀들까지. 계단에 걸터앉아 출연진의 퍼포먼스를 지켜볼 수 있고 때론 전시장에 온 듯 걸어 다니며 둘러볼 수 있다.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공연 측이 제공한 안대를 끼고 콘크리트 벽을 타고 들렸을 법한 아파트 주변의 소리에 집중할 수도 있다. 공사장 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등 공연은 아파트에서 쉬 일어나는 일들을 한 곳에서 경험하도록 했다. 스피커마다 다른 소리가 들리니 오히려 구석구석 다니기를 공연 측은 제안한다.

정영두 두 댄스씨어터 대표가 안무 및 연출을 했으며 정이삭 동양대 교수 및 건축가가 공간을 구성했다. 카입 사운드디자이너가 아파트의 소리를 연구하고 영화 ‘순환하는 밤’의 백종관 감독이 구룡마을, 개포주공아파트, 헬리오시티, 한강 대교 등을 다니며 아파트의 과거와 현재를 영상에 담았다. 공영선 김원 박재영 무용가, 권재원 김영옥 신윤지 배우가 그 공간을 채운다. 이들은 스스로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동시에 관객이 되기도 한다. ‘포스트 아파트’에 절대신은 없다. 모두가 세계의 일부가 되고 주체가 되며 또다시 배경이 된다.

우리는 왜 ‘아파트’에 사느냐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살핀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아파트를 바라본다. 1970년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상징처럼 등장해 중산층의 과시욕구를 거쳐 폐허가 되버린 공간이다.



돌고 돌아 평상에서 끝난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함께 하는 주거 공간인 아파트의 원시 개념인 듯 이곳에 모여앉은 이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포스트 아파트’는 아파트의 몰개성이나 네트워크의 단절 등을 비판하지 않는다.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에 대한 환기를 요구하는 듯하다.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아파트란 무엇인가”라는 단순한 궁금증이 공연의 출발이고 결말이다.

정영두 연출은 “우리에게 아파트(집)는 어떤 것인가. 아파트라는 생물은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지 찾고 싶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공연 ‘포스트 아파트’의 한장면
공연 ‘포스트 아파트’의 한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