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 엄격해야 가짜 병역거부자 걸러내죠"

by노희준 기자
2018.07.12 06:00:00

양심적 병역거부로 1년 2개월 수감
5년간 ‘대체복무제 도입’ 법적 싸움
“연수원에서도 만류...결국 계란으로 바위 깨지더라”
대법, 헌재 취지 살려 무죄나 선고 연기할 거
복무기간+근무강도보다 ‘군 무관한 심사·관리’ 더 중요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제가 신념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는 바뀔 거라는 희망 덕분이었습니다. 다음 세대는 감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말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 생활을 했던 첫 사법연수원 출신 백종건(사진) 변호사는 지난했던 법정 투쟁을 버틸 수 있게 한 힘으로 ‘변화에 대한 희망’을 말했다.

백 변호사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다. 지난달 28일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헌법재판소의 전향적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일조한 대표적인 양심적 병역 거부자다.

백 변호사는 200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탄탄대로였던 그의 삶이 틀어지기 시작한건 2011년이다. 입영통지를 받았지만 거부했다. 집총을 부인한 교리와 신념에 따랐다. 입대를 거부한 그를 국가는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5년간 지리한 법정싸움을 벌였다. 백 변호사는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양심적 병역 거부자 200여명의 변론도 댓가없이 맡았다.

이기지 못할 싸움이었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작은 밑거름이 되겠다는 각오였다. 2016년 3월 대법원은 그에게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서울 남부교도소 수감돼 형을 살던 그는 작년 5월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백 변호사를 만났다. 그의 아버지도 여호와의 증인 신자다. 입대를 거부해 백 변호사가 5살 때 징역을 살았다. 백 변호사가 법조인이 되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다 .

그는 “법을 공부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며 “나치 당시 홀로코스트,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선조들이 받은 박해,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군사정권 당시 이뤄진 끔찍한 일들 역시 제 신념에 영향을 줬다”고 했다.

병역을 거부하기 위해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사법고시를 패스한 전도유망한 법조인에겐 더 그렇다.



“사법연수원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네가 높은 자리에 올라 변화를 이끄는게 나을 거라는 조언도 들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계란에 바위가 깨지더군요.”

백 변호사는 헌재의 대체복무제 도입 판결은 패소할지 알면서도 법정다툼을 포기하지 않은 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4년간 86건의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들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했다.

백 변호사는 다음달 말 예정인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공개변론도 낙관했다.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전원합의체엔 올린 것은 14년만이다.

백 변호사는 “대법원 기존 판례 요지는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이상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며 “헌재 명령으로 대체복무제도 도입이 예정된 만큼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내릴 사실상의 실익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대법원이 해당 사건에 유죄를 선고하면 혼란만 야기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복무기간을 길게 하고 근무강도를 어렵게 해 정말 신념에 따른 게 아니라면 신청 자체를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대체복무를 할 바에는 군대에 간다고 할 정도로 엄격히 해야 ‘양심을 빙자한 가짜 병역거부자’를 걸러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복무기간이나 근무강도보다는 군 관할 밖이냐 안이냐를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형식으로든 군대와 연관된 대체복무라면 이마저도 거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니고 대체복무를 통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평범한 시민이에요. 청년들이 대체복무제를 통해 성실하고 겸손하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 시민들도 제도 도입을 환영할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