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재건축 관리처분 덫에 걸린 지자체

by김기덕 기자
2018.02.09 05:30:00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지난 5일 서울 서초구청이 발칵 뒤집혔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조합원 400여 명이 서초구청으로 몰려와 관리처분계획 외부 검증 철회를 요구하며 항의집회를 연 것이다. 조합 측은 수억원이 예상되는 재건축 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지난해 서둘러 관리처분계획을 신청했는데 이제 와서 정부가 딴지를 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내 식구(구민)는 내가 챙긴다”며 한국감정원 검증 의뢰를 하지 않고 자체 검증위원회를 만들어 처리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서초구청의 결정을 들은 송파구도 바로 다음날 잠실 미성·크로바와 진주아파트의 관리처분계획인가 신청에 대한 타당성 외부 검증을 철회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로써 이달 초 가장 먼저 자체 검증 의사를 밝힌 강남구를 포함해 강남3구가 모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정부의 집값 잡기에서 비롯됐다. 올 들어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서울 집값이 과열될 조짐을 보이자 국토교통부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지난해 말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단지의 관련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라고 지시한 것이다. 사실상 투자자들이 재건축 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서울시를 압박해 구청의 자체적인 검증 이후 사후적인 감독을 하라고 지시했다.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국토부는 구청의 고유 권한인 재건축 관리처분계획 검토를 지시했다. 서울시는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강남3구를 압박하며 특별사법경찰 및 자금조달 계획서 검토 강화, 집값 안정을 위한 이주 시기 조정 카드도 고려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 등 주택 공급을 늘리는데는 정작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구청은 외부 검증 비용이 수천만원이 들어 자체적인 검증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사실상 오는 6월 치러질 지방선거를 의식해 주민들 눈치만 살피고 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하면 될 일을 들쑤셔 잡음만 키우는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