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방관이다]"출동벨 대응 못할까봐..근무중엔 커피 안마셔요"

by한정선 기자
2015.11.09 06:00:00

소변 마려워 출동 차질 우려 근무 중 커피·물마시기 자제
점심식사 시간은 15분, 비상상황 대비해 각자 먹어
화재진압은 물론 고양이 구조·벌집 퇴치·고독사 확인도

[이데일리 한정선 기자] 나는 소방관이다. 올해로 3년 차다. 서울 관악구 관악소방서에서 근무한다. 경기도 용인에서 살다보니 출근 거리가 멀어 기상시간이 이르다. 오전 5시 30분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요새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 계속 어깨가 뻐근하고 허리 통증이 가시질 않는다.

소방서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0분. 8시 40분에 교대식이 있다. 전날 당직 근무조인 구조대 1팀으로부터 야간 상황을 보고 받았다. 자살사건을 보고하는 야간당직의 표정이 어둡다. 고시생과 학생들이 많은 관악구는 요즘 취업난으로 고시원에서 목을 매거나 번개탄을 피워 자살하는 사건이 드물지 않다.

출동훈련을 겸한 교대식이 시작됐다. 출동벨이 울리자 내가 소속돼 있는 구조대 3팀 팀원 7명은 구조장비들이 실려 있는 구조차량에 올라 방화복으로 갈아 입는다. 2분내로 9.8kg짜리 공기통을 포함한 20kg의 방화복 착용을 완료해야 한다. 우리가 구조차량 안에서 개인장비를 점검하는 동안 펌프차, 탱크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차량을 점검한다. 10여분 동안 장비 점검을 끝내면 야간 당직자는 퇴근한다. 이제부터는 대기다.

소방서에서는 근무시간 중에 커피를 마시는 대원들을 보기 힘들다. 커피를 마시면 자주 소변을 보게 돼 출동벨이 울렸을 때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이 때문에 근무 중에는 물도 잘 마시지 않는다.

오전 10시. 서림동에서 들고양이가 자기 집 주차장에 새끼를 낳은 것을 발견했다며 치워달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런 민원 때문에 긴급한 인명구조 출동이 늦어질까봐 걱정될 때가 많다. 하지만 대응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항의가 이어지기 때문에 나가야 한다.

어미고양이가 찾을 수 있도록 새끼고양이들을 상자에 담아 잘 보이는 곳에 내놓았다. 보통 들고양이를 구조하면 구청과 협의된 동물병원에 데려가 중성화수술을 시키지만 새끼 고양이들은 동물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중성화수술을 시킬 때까지 키울 수가 없어서란다.

11시 30분 점심을 먹기 위해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은 15분. 그나마도 팀 전체가 함께 먹지 못한다. 2명은 비상출동에 대비해 대기한다. 각자 식사가 끝나면 바로 복귀다. 다른 동료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매너’가 소방서에서는 금기사항이다.

옆자리에서 식사 중이던 구급대 대원은 구급대 출동벨이 울리자 숟가락을 던지고 뛰어 나갔다. 흔히 겪는 일이다. 식당 아주머니가 담담한 표정으로 식판을 치운다.

전날 당직팀과 주간 근무팀의 오전 교대식.(사진=관악소방서 제공)
오후 2시 19분 관악구 봉천동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출동벨이 울리자마자 구조차량으로 달려갔다. 화재 골든타임은 5분, 1분이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차량 승차 후 방화복으로 갈아 입는다. 팀 막내인 나는 출동 중 서면으로 상황보고를 쓴다. “칙~칙 봉천동 721 번지” 대장님의 무전기 소리를 듣고 출동시간, 화재 발생 장소, 도착시간을 상황판에 적는다.



주택가 입구에서 한 아주머니가 귀를 먹먹하게 하는 굉음을 내는 사이렌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천천히 길을 건넌다. 구조팀 선배가 투덜댄다. “또 나왔네. ‘너는 와라, 나는 간다’족” 긴장감이 넘치던 차량 안에서 실소가 터졌다. 1분 1초가 아쉬울 때 길을 가로막는 시민들을 보면 한숨이 난다.

2시 22분 경 화재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은 동네 주민들로 북적였다. 연립주택에 사는 집주인이 가스불을 켠 채 냄비를 올려놓고 외출해 발생한 화재였다. 골목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했지만 동네 주민이 일찍 발견해 신고한 덕에 불은 번지지 않고 끝났다. 헛걸음을 했다는 생각보다는 ‘큰 불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돌아오는 차안을 채웠다.

선배들이 간식을 먹는 동안 서면으로 기록했던 상황보고를 컴퓨터로 옮겨 작성한다. ‘2시 19분 사고가 접수돼 22분에 도착해 화재를 완진하고 40분에 귀소’ 서울시내 모든 소방관련 사고는 서울종합방재센터에 곧바로 보고한다.

오후 3시 33분. 다시 출동벨이 울렸다. 혼자 사는 74세 아버지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딸의 신고였다. 대장님이 “고독사네”라고 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요양보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오전에는 연락 되셨어요? 비밀번호 알고 계세요? 열쇠로 열어야 한다구요? 열쇠 가지고 계세요?”

열쇠를 가진 요양보호사가 함께 도착한 덕에 문을 부수지 않아도 됐다. 문을 열자 할아버지는 아파트 현관 앞에 쓰러져 계셨다. 대장님이 말했다. “오늘 오전에 돌아가셨나 보네” 이미 시신에서는 시반(사후에 시체에 나타나는 얼룩)이 보였다. 아파트 이웃 주민들이 복도에 모여 웅성거리다 우리가 집밖으로 나오자 다가왔다. “좋은 것 못 보시니까 멀리 가 계세요” 밖에서 기다리던 경찰에게 사건을 인계했다. 사인 확인은 경찰 몫이다. 우리 일은 끝났다.

돌아오는 차량 안은 적막했다. 소방서로 돌아오자 한 선배는 체력단련실로 올라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가 운동 밖에 더 있나? 땀 흘리고 잊어야지”

또다른 선배는 “사망사고 발생했으니 이번 달에도 다들 보건소에 가야겠네. 얘기하다보면 다시 생각나니까 더 스트레스 받는데 그걸 왜 모르나”라고 혀를 찼다. 구조작업 중 시신을 목격한 대원은 의무적으로 2시간씩 보건소에서 심리상담을 받아야 한다.

오후 5시30분이 되자 오늘 밤 당직인 구조대 2팀이 도착했다. 대장님은 2팀 대장님과 새로 도입하는 구조차량 문제로 얘기를 나눴다. 나는 2팀에 주간 상황보고를 했다. 10분 뒤 교대식이 시작되자 차량 사이렌 소리가 다시 한번 소방서를 가득 채웠다. 교대식이 끝난 뒤 나는 물을 한 컵 가득 부어 들이켰다. 11월 9일 오늘은 소방의 날이다.

<이 기사는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소방관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