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정치금융의 경제학

by송길호 기자
2015.04.30 06: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정치금융의 유혹은 달콤하다. 혜택은 소수의 이해관계자에게 즉각적으로 돌아가지만 비용은 사회 전체적으로 분산되며 미래에 교묘히 전가된다. 그 결과 자원배분(resource reallocation)은 왜곡되고 효율성과 공평성은 약화되며 경제의 활력은 떨어진다. 반칙과 편법으로 이뤄지는 정치금융, 바로 시장경제의 적이다.

자산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 일본 은행들은 고민에 빠진다. 자산가격 폭락으로 담보가치가 크게 약화되면서 부실위험이 고조된 거다. 대응방식은 안일했다. 잠재 부실기업들에 이자를 깎아주고 만기를 연장해주는 등 특혜를 제공했다.과감히 메스를 대기 보다는 산소호흡기로 연명해주는 미봉책을 택한 셈이다.

잠재 부실기업들에 대한 관용적인 대출의 배경에는 정치권과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있었다. 당시 경제 상황을 통상적인 경기순환기의 침체상태로 판단하고 정치논리를 앞세운 거다. 부실기업의 회생가능성을 과신하며 구조적인 대응보다는 일시적인 경기부양에 집중했다. 감독당국의 대응도 미온적이었다. 은행들은 부실 가능성이 높은 대출채권을 위험(at risk)이 아닌 요주의(special attention) 로 관대하게 분류하며 충당금 부담을 줄여나갔지만 당국은 제동을 걸지 않았다.

대가는 혹독했다. 신용지원이 없으면 곧 파산하게 될 한계기업, 이른바 좀비기업(zombie company)들이 우후죽순 양산됐다. 버블붕괴 이전 전체의 4∼6% (자산기준)에서 1990년대 후반 14%수준으로 급증했다. 부실기업 퇴출이 지연되면서 일본 경제는 생산성과 역동성이 크게 떨어지고 ‘잃어버린 20년’의 길고 어두운 터널로 점차 빠져 들게 된다.

정치권력이 경제문제에 개입할 경우 정책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정책 효과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 보다는 유권자의 원성을 피하고 당장의 박수를 기대하면서 인기 영합적으로 정책을 비틀기 때문이다. 좀비기업들은 이 같은 토양위에서 창궐하는 독버섯이다.



좀비기업은 그 자체로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정상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정상기업에 흘러갈 자원을 빨아들여 경제 전체에 인적· 물적 자원의 원활한 흐름을 막기 때문이다. 기업의 정상적인 진입과 퇴출을 통해 이뤄지는 창조적 파괴과정(creative destruction)은 그래서 무력화된다. 경제의 생산성은 떨어지고 성장잠재력은 약화된다.

불행히도 지금 한국 경제의 궤적은 일본의 90년대를 따라가고 있는 모습이다. 특혜금융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의 비중이 15%에 달한다.건설업은 40%, 조선업을 포함한 운송장비업은 25 %를 찍었다(KDI 분석). 역시 정치논리가 근저에 깔려 있다. STX는 대표적인 예다. 대선이 있던 2012년 구조조정이 필요했지만 금융당국은 선거를 의식해 이를 지연시키다 부실규모룰 눈덩이처럼 키웠다.

논란이 되고 있는 경남기업 문제는 정치금융의 차원을 넘어 부패의 집대성이다. 금연(金緣)으로 이뤄진 은밀한 거래, 이해상충의 문제를 야기하는 정치권력의 압력, 금융당국과 은행들의 편승. 1조원이 넘는 손실은 고스란히 사회적 부담으로 치환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정치논리에 따라 어떻게 뒤틀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실자본주의의 전형이다.

경제회생의 최대 적은 포퓰리즘과 부패로 얼룩진 정치권력이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고 공짜 점심은 없는 법. 정치금융의 외풍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기업에 묶인 돈이 성장기업으로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터야 한다. 정치금융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금융개혁의 첫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