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 셔먼 정무차관의 어설픈 역사인식

by논설 위원
2015.03.03 06:00:01

미 국무부의 웬디 셔먼 정무차관이 한·중·일 3국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중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어딘지 섣부른 느낌이다. 며칠 전 카네기평화재단 연설에서 각국의 자제를 촉구하며 “민족감정은 악용될 수 있고 정치 지도자들이 과거의 적을 비난해서 값싼 박수를 받아내기는 어렵지 않다”고 언급했다니 그의 상황 인식에 심각한 우려조차 느끼게 된다. 국무부 서열 3위에 해당하는 고위 당국자로서 할 말이 아니다.

그가 위안부 문제와 역사교과서, 동해의 명칭 등을 둘러싼 이견을 두루 언급한 것으로 미뤄 과거사 갈등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감정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자제를 권유하는 모양새여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 식이라면 잠정적인 봉합에 그칠 뿐이며, 언젠가는 다시 갈등과 마찰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과거사 해결방식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입장은 분명하다. 가해자로서 역사적 과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한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삼일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에 대해 “서로 손잡고 미래 50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나가기를 바란다”면서 그 전제로 “용기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라”고 촉구한 것이 그런 맥락이다.



지리적으로 이웃한 일본과 과거사 갈등으로 인해 마음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셔먼 정무차관이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한 자신의 부친의 사례를 들며 “그때의 트라우마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도 식민통치 하에서 우리 민족 전체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는 왜 그냥 넘어가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견해가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지의 여부다. 내달로 예정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방미를 앞두고 자칫 과거사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미리 막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그의 언급대로 “도발은 발전이 아니라 마비를 부르기 마련”이다. 역사적 과오를 부정하는 자체가 도발이라는 사실을 일본에 먼저 일깨워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