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비결요? 연줄 대신 아이디어를 잡으세요"

by최훈길 기자
2015.01.26 07:00:00

9급 출신 첫 여성 1급 공무원 박현숙 여가부 기조실장
"'공직=행복' 조언, 유리천장 없애려는 조직문화 도움 커"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1975년 당시 출근하자마자 한 일은 상사 책상 닦기였죠. 청소 아주머니가 없던 시절이라 여직원들이 순번을 짜서 사무실 청소를 했어요.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남녀 공무원 봉급은 같아도 ‘청소는 여성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던 시절이었어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왔는데, 되돌아보니 어느새 40년 전 일이네요.”

박현숙(58·사진) 여성가족부 기획조정실장은 공직에 들어올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만 18세 때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해 장·차관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자리인 고위공무원 가급(1급)으로 지난 8일 승진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9급 출신 여성 공무원이 기조실장에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승진 비결’을 캐묻는 기자에게 박 실장은 40년 공직 생활 에피소드로 답했다. 그의 삶은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준 멘토와 그의 구슬땀으로 엮여 있었다.

박 실장은 서울 성신여대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기간에 지방 공무원 9급 공채 공고를 봤다. 6촌 형부가 공직에 근무하고 있어 그의 부모는 공채 응시를 권유했다. 320여 명이 응시한 시험에 그를 포함해 13명이 합격했다. 대학진학 대신 공직을 택한 그는 1975년 9월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민원 전산시스템이 없어 업무처리가 제때 이뤄지지 않던 시절, 그는 특유의 꼼꼼한 성격을 발휘해 민원을 챙겼다. “민원 처리기한이 가까워지면 동료들에게 전화로 ‘처리기한이 며칠 안 남았어요’라고 알려줬죠. ‘주민들을 친절하게 진심으로 도와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주민들은 민원 해결에 좋아하시고 동료들도 제가 챙겨주는 것에 고마움을 표했죠.”



그는 1989년 당시 여성 공무원으로는 처음으로 군포시 경리계장을 맡았다. 꼼꼼한 일 처리를 인정받은 결과였다. 박 실장은 “뜻밖에 그런 자리를 받았다. 거기서 일했을 때 밤을 새우며 참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그가 1996년 중앙부처인 정무장관실로 옮기는 데는 ‘관운(官運)’도 따랐다. “그때 지방과 중앙 부처 간 인사교류가 있었어요. 때마침 경기도로 올 수 있는 분이 계셨죠. 운이 잘 맞았어요.”

정무장관실로 온 뒤로 그는 여성부 등의 주요 여성정책을 도맡아 해왔다. 그는 2008년 여성부 권익기획과장 시절 이주여성 긴급지원센터를 전국으로 확대했던 일을 뜻깊은 경험으로 꼽았다. “기획예산처를 열심히 찾아갔어요. 결국, 센터 4곳을 18곳까지 확대하는 예산을 확보했죠. 기획예산처 공무원이 저한테 ‘센터 확대도 필요했지만, 예산 배정에 박 과장의 정성도 감안했다’고 했어요. 기뻤죠. 그리고 그 당시 함께 일했던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장과는 아직도 안부 전화를 챙기고 있답니다.”

대통령 표창, UN공공행정상 등 ‘상복(賞福)’도 많았던 박 실장에게 시련은 없었을까. “일하면서 너무 힘들 때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을 몇 번 했었죠. 그런데 존경했던 한 상사께서 저한테 ‘안 된다. 일을 더해라. 공직자로서 일한다는 건 행복’이라고 하셨어요.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경력단절을 없애는 조직문화를 가진 여성가족부 분위기도 계속 일할 수 있는 토대였죠. 제가 이번에 승진한 것도 장관님 의지가 없었다면 안 됐을 거에요.”

지난 해 세월호 참사 등을 겪으면서 뒤숭숭해진 후배 공무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성의를 가지고 진심으로 일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정성을 다하면 성과가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자세로 일하자’는 게 공직생활 좌우명”이라며 “연줄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잡고, 남들과 비교되게 자신이 맡은 일을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아주 평범한 공무원으로 40년을 살았다”고 말했지만, 그의 삶에는 공직 기본에 충실하며 뚜벅뚜벅 걸어온 땀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