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미스터 건강보험' 김종대 이사장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by이승현 기자
2014.11.12 07:00:00

14일 3년 임기 마치고 강원도 영월로 낙향
건강보험 ''치료에서 예방'' 패러다임 변화 성과
"건보료부과체계 및 지출체계 손 못대 아쉬워"
"기존 프레임에 갇힌 정책 실패할 수 밖에 없어"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세계 최고의 건강보장제도가 되도록 하는 게 제 꿈입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가장 짧은 기간에 전 국민 대상 보장 체계를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까지 독일 127년, 벨기에 118년, 일본 36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12년에 이를 완성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를 배우기 위해 찾고 있다.

[이데일리 김정욱 기자]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이런 건강보험제도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다. 이 중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건강보험제도의 산증인이자 큰 족적을 남긴 대표적 인물이다. 김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에서 건강보험제도 도입 실무자로, 또 책임자로 일했다. 2011년에는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주무부처의 반대를 무릅쓰고 담배 소송을 강행하는가 하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퇴임 후 자신의 건강보험료가 ‘0원’이라고 공개하는 등 3년 임기 내내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싸움닭을 자처하며 건강보험 개혁에 앞장섰던 김 이사장이 오는 14일 임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김 이사장의 소회를 들어봤다.

2011년 11월 15일, 공단 이사장에 취임한 후 그는 건강보험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동안 우리 건강보험은 질병 치료에 중점을 뒀다. 질병으로 산업현장에서 이탈한 근로자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한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회 환경이 변하면서 건강보험의 역할도 바뀌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가 됐고, 만성질환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으며 생산 가능 인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김 이사장은 “‘치료에서 예방 중심으로’ 건강보험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예방을 해서 병에 안 걸리도록, 그래서 비용을 줄여야 건강보험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2012년 8월 건강보험공단 쇄신위원회를 구성, 6개 개혁 방안을 담은 ‘실천적 건강복지 플랜’을 만들었다. ‘예방 중심’의 건강보험제도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 건강에 위해가 되는 요소를 찾았고 첫번째 타깃으로 담배가 선정됐다.

그는 “담배는 직접적 만성질환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하고 진료비도 많이 들어 건강보험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 1호”라며 “2012년 12월부터 담배 소송 등 금연 대책 마련에 나섰고 지금 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번째 타깃은 비만이다. 건보공단은 최근 ‘비만관리대책위원회’를 발족,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비만 문제 해결을 돕고 있다. 건보공단은 이후 ‘식생활 개선’과 ‘술’까지 영역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김 이사장은 건강보험 부과체계와 지출체계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같은 보험의 가입자가 7가지 기준으로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이로 인한 민원이 일년에 5730만건씩 들어올 만큼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가입자가 보험료 내는 기준이 같아야 한다. 보험료는 명쾌, 단순,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출체계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현재 건강보험 제도는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보험금을 청구하면 심평원에서 이를 심사하고, 심사 결과에 따라 건보공단에서 보험금을 지출하는 체계다.

김 이사장은 “건강보험을 책임진 곳에 보험금이 청구돼야 책임있게 지불이 되는데 지금은 엉뚱한 데로 가서 돌아오고 있다”며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체계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입과 지출 간의 균형이 유지돼야 한다. 이게 깨지면 건강보험이 파탄난다”며 “지속 가능한 건보를 만들기 위해 현재의 시스템을 빨리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1만3000여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초대형 공공기관인 건보공단을 이끌기 위해 김 이사장이 선택한 수단은 ‘소통’이다.

공단 이사장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 임직원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가 선택한 것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다. 처음에는 시작한 것이 페이스북이었고, 이어 ‘김종대의 건강보험 공부방’이란 블로그를 개설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임직원들과 공유하고 블로그에는 담배 소송과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등 현안이 되는 사항에 대한 글을 올려 공감을 이끌어냈다.

김 이사장의 블로그는 공단 임직원뿐 아니라 외부 인사들의 관심 대상이 됐고, 개설 2년도 채 안 된 지난 10월 20일 방문자가 5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최근 건강보험 부과체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송파 세 모녀’와 자신의 보험료를 비교한 글도 이 블로그를 통해 공개됐다.

그는 “건강보험의 역사와 정신, 가치를 임직원들과 공유해야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블로그를 통해 내부뿐 아니라 외부까지 소통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소통에 이은 그의 경영 키워드는 신뢰다. 건강보험공단 노조는 과거부터 강성 노조로 유명했다. 노조원들에게 그는 취임 직후 “경영의 한 축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말뿐 아니라 실제로도 노조와 꾸준히 대화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가장 신경을 쓴 것이 인사였다. 인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잦은 파업으로 악명 높던 건보 노조는 김 이사장 재임기간 동안 단 한차례로 파업을 벌이지 않았다. 지난 9월에는 공공기관 최초로 정부가 요구한 공공기관 방만경영 개선 과제에 합의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과거라면 노조와 방만경영 개선 과제 이행 합의와 같은 일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꾸준한 소통으로 신뢰를 얻어낸 결과로 항상 노조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숙제를 남기고 야인으로 되돌아가는 아쉬움은 공직에 남은 후배들을 향한 쓴소리로 이어졌다. 그는 “미래의 일어날 일을 예측해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기존의 프레임에 맞춰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며 “이런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신념을 갖고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데 눈치 보기에 급급해 중요한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다고 있다”며 “(여론이 반대해도)해야 할 일을 하면 그 순간은 죽을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절대 죽지 않는다”고도 했다.

후임 이사장에게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지를 묻자 김 이사장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다언삭궁 불여수중(多言數窮 不如守中)’ 글귀로 답을 대신했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처하니 말을 아껴 가슴 속에 담아둬라’라는 의미다. 김 이사장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퇴임 후 강원도 영월로 갈 계획이다. 낮에는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저녁에는 시간에 쫓겨 묵혀뒀던 책을 꺼내 ‘주경야독’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마라톤 같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는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남은 생은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김종대 이사장은

1947년생으로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 공직에 입문했다. 보건사회부에서 근무하며 보험과장과 의료보험국장, 공보관, 사회복지정책실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역임했다. 공무원 시절 건강보험과 관련된 실무를 맡았고 두 차례 청와대에 근무하면서도 사회보험 관련 정책을 다루는 등 공직생활을 건강보험제도와 함께 했다.

1999년 직장 건강보험과 지역 건강보험의 통합에 반대해 자리에서 물러날 정도로 강단 있는 성품으로 유명하다. 10여년 간의 야인생활 끝에 201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금의환향했다. 3년 임기 동안 건강보험 개혁과 홍보에 앞장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