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부동산계급] 서울→수도권…'전세난민' 도미노

by정수영 기자
2014.10.07 06:30:00

서울 전셋값 3년째 오름세
세입자들 경기·인천 이동
수도권 전셋값 '급등' 영향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2014년 10월. 두 아이의 아빠이자 남편인 김영환(38)씨는 서울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오늘이 이 도시의 마지막 밤이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김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휘영청 밝기만 하다.

2001년 서울에 취업차 올라온 김씨는 당시 목돈 6000만원을 들고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첫 보금자리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강남이었다. 열 두평(40㎡) 짜리 26년 된 낡은 재건축 아파트였지만 대한민국 부촌 1번지 강남에 입성한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6년 뒤 결혼을 하게 된 김씨는 조금 더 넓은 집이 필요했다. 하지만 벌어놓은 돈과 전세대출을 합쳐도 강남에 스무평짜리 아파트 전셋집을 구하기는 빠듯했다.

외벌이인 김씨는 결국 서울 구로구 쪽으로 이사를 했다. 전용면적 60㎡에 막 입주를 시작한 새 아파트였다. 김씨 가족은 곧 경기도 김포시로 다시 이사를 간다. 이 동네에 둥지를 튼지 8년만이다. 계약 만료기간이 다가오자 집주인이 월세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서울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며 2년 후에는 꼭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노라 다짐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셋값. 고된 서울살이를 접고 수도권으로, 지방으로 떠나는 ‘전세 난민 김씨’가 급증하고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 시세통계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2011년 16.21%로 급등한 이후 2012년 4.29%, 2013년 7.15% 줄곧 오름세다. 올해 들어서도 8월 말 누계기준 2.89%에 이른다. 이 기세라면 지난해 전셋값 상승률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의 경우도 2006년 구로구에 처음 이사 왔을 당시 전용 60㎡ 아파트 전셋값은 1억4000만원이었다. 하지만 4년 뒤 전세는 2억원을 찍었고, 최근엔 2억8000만원으로 올랐다. 더구나 은행 예금금리가 2%이하로 떨어지자 전셋집을 보증부 월세(반전세)로 전환하는 집주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김씨는 “전셋값 4000만원을 올려주기 위해 대출을 받으면 한달에 한 12만원 정도를 이자로 내면 되지만, 이를 월세로 전환할 경우 20만원이 넘는다”며 “기존에 받은 대출이자까지 포함하면 주거비 부담이 너무 커 서울에서 계속 버티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8월 말 기준 3억852만원으로 지난해 9월 2억8201만원에 비해 1년 새 2651만원이나 올랐다. 실제로 서울은 같은 비율로 전셋값이 오르더라도 상승 폭이 커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에 비해 수요자들의 부담이 훨신 많은 편이다. 이들이 경기도나 인천 등 출퇴근이 가능한 수도권 외곽으로 속속 이동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셋값 급등시기인 2011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서울 인구는 36만8122명이 줄었다. 전체 이동자 수는 622만1589명으로 이 가운데 215만5171명은 서울이 아닌 다른 시·도로 이사를 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서울 전셋값 부담에 수도권 외곽에 집을 사거나 새 전셋집을 얻어 이사한 사람들이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옮긴 인구는 129만 1578명(순이동자 수 35만1135명), 인천으로 이사한 인원은 17만7694명(순이동자 수 5만6200명)에 달한다.

최근엔 서울을 떠난 사람들이 경기·인천에 자리 잡으면서 전셋값 급등 현상이 도미노처럼 수도권 외곽으로 번지고 있다. 올해(1~8월) 들어 서울 전셋값은 3.22% 올랐지만 같은 기간 인천은 4.81%, 경기도는 3.47% 각각 상승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서울의 비싼 집값과 전셋값을 피해 수도권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당분간 전셋값 급등에 따른 조정기를 거치면 외곽지역도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