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청약예금’ 저금리 횡포 가입자들 연1000억 날린다

by조선일보 기자
2006.10.16 08:35:59

정기예금 금리보다 훨씬 낮은 3%대
가입자들 갈아타기도 안돼 ‘은행의 봉’

[조선일보 제공] 회사원 유모(40·서울 도봉동)씨는 얼마 전 판교 중대형 아파트 청약을 하려고 장롱에 넣어 뒀던 주택청약예금 통장을 꺼냈다가 황당한 사실을 발견했다. 통장에 찍혀 있는 지난해 청약예금 이자율이 연 3.0%에 불과했던 것이다. 유씨는 “5년 전 청약예금에 가입할 땐 창구직원이 ‘정기예금 금리 정도는 준다’고 했는데, 이제 보니 정기예금(연 4%)에 훨씬 못 미치는 이자를 받았다”며 “은행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전국 280여 만명에 달하는 청약예금 가입자들이 연간 1000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적게 받는 등 은행들로부터 ‘금리 횡포’를 당하고 있다.

◆정기예금 금리+알파(α) 준다더니…

청약예금은 일정기간 돈을 묻어 두면 아파트 청약 자격이 주어지는 예금으로, 자유로운 입출금이 안 되고 저축기간 동안 시중금리가 오르더라도 초기 약정 금리가 적용되는 등 정기예금과 성격이 흡사하다. 실제로, 은행들은 2000년 주택은행(현 국민은행)의 청약예금 독점이 풀리면서 청약예금 유치경쟁을 벌일 땐 ‘정기예금 금리+α(알파)’의 보너스 금리를 주면서 고객을 끌어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2~3년이 지난 뒤에는 은근슬쩍 금리를 낮추었다.

고객을 새로 유치할 땐 ‘고금리’로 유혹하고, 일단 찾아온 고객에겐 ‘저금리’로 홀대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들은 “청약예금은 정기예금과 달리, 아파트 청약 절차 대행에 따른 관리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청약예금 가입자 중에는 아파트 청약을 1년에 한 번도 안 하는 고객들이 훨씬 더 많다. 이들은 자기와 상관없는 비용을 대신 부담하며 정당한 이자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원 홍모(C기업 대리)씨는 “청약예금에 가입해 2년 넘게 은행에 돈을 묶어 두었다”면서 “내 경우는 아파트 청약을 한 번도 안 했는데 관리비용을 이유로 쥐꼬리만한 이자를 주는 것은 약속 위반”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청약예금은 개인연금처럼 ‘금융기관 갈아타기’도 허용되지 않아 은행측이 아무리 낮은 금리를 적용해도 소비자로서는 대응할 수단이 없다.

◆적용 금리도 은행마다 천차만별

현재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8개 은행이 관리 중인 청약예금은 총 15조1700억원에 달한다.

이들 은행이 적용하는 청약예금 평균금리는 3.90% 수준. 정기예금 평균금리(4.56%)보다 0.66%포인트나 낮다. 청약예금 가입자들이 연간 1000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손해보고 있는 셈이다. 청약예금 금리 수준도 은행마다 천차만별이다. 8조5300억원대 청약예금을 유치하고 있는 국민은행은 “관리비용 부담 때문”이라며 정기예금보다 1%포인트 이상 낮은 연 3.55%를 청약예금에 적용하고 있다. 반면 신한은행은 청약예금과 정기예금에 똑같은 연 4.1%를 주고 있고, 광주은행과 외환은행의 청약예금 금리(각각 연 4.6%, 연 4.2%)도 정기예금 금리 수준과 비슷하다. 게다가 인터넷 청약이 활성화되면서 비용절감 요인이 생긴 점을 감안하면 일부 은행들이 주장하는 ‘관리비용 부담’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A은행 청약예금 담당자는 “현행 청약예금은 실제 청약 여부, 청약 횟수에 상관없이 전체 예금 가입자들에게 비용을 분담시키는 문제가 있다”면서 “일단 이율은 제대로 보장해 주고, 실제 청약자에게 별도 수수료를 받는 것이 선의의 피해자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