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자리까르!’” 천의 얼굴 가진 환상 속 이 나라[여행]
by강경록 기자
2024.12.06 04:31:00
인도네시아의 숨겨진 낙원 '바탐’
싱가포르 남쪽 인접한 항구도시
부속섬 '라노'선 해양스포츠 짜릿
웅장한 이슬람사원 절로 손모아져
낮엔 쇼핑, 밤엔 야시장 '나고야타운'
'발레발레' 원주민의 따뜻한 환대
잠시 일상 멈추고 작은 쉼표 찍어
[바탐(인도네시아)=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쉼 없이 달려온 일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 공허함의 틈새로 갑자기 떠나게 된 여행.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2년 만에 떠나는 길이다. 목적지는 인도네시아의 보석 같은 섬, 바탐과 빈탄이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눈보라 속에 멈춰 선 비행기, 끝없는 기다림, 좁은 좌석에 웅크린 채 겨우 얻어낸 쪽잠. 모든 것이 여행의 문턱에 시련처럼 걸렸다. 다행스럽게도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던 순간. 설렘이 다시 가슴을 채웠다. 아침이 열리는 시간에서야 바탐 항나딤 공항에 첫발을 디뎠다. 어둠 속에서 깨어나는 섬의 공기가 내게 속삭였다. “여기서 너를 위한 시간이 시작될 거야.” 예상치 못한 폭설도, 길어진 기다림도 이제 상관없다. 이번 여정에선 무엇이 남을지, 그리고 이 작은 섬들이 들려줄 이야기가 무엇일지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인도네시아는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라고 불린다. 한반도의 9배에 달하는 넓은 영토와 1만 7504개 섬이 빚어낸 다양한 풍경 때문이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혹적인데 여기에 섬마다 독특한 문화와 자연도 공존한다. 여행자는 그저 섬이 보여주는 얼굴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바탐과 빈탄도 그렇다. 인도네시아의 천 가지 얼굴 중 하나를 살짝 엿볼 뿐이다.
바탐은 싱가포르 남쪽에 자리한 작은 섬이자 항구도시다. 과거엔 고요한 어촌마을이었다. 지금은 활기찬 도시와 고즈넉한 자연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으로 거듭났다. 잠시 일상을 멈추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에 더없이 좋은 섬이다. 화려하진 않아도 진정성 넘치는 섬에서 ‘나만의 작은 쉼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를 품고 섬으로 발을 디딘다.
첫인상은 기대 이상으로 다채로웠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도심 곳곳에 자리한 이슬람 사원. 화려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에 절로 몸과 마음이 경건해지는 곳이다. 그중 최근 새롭게 문을 연 라자 하마다 대사원은 바탐을 대표하는 이슬람 사원이자 도시의 랜드마크다. 모스크의 하얀 대리석 외벽과 짙은 남색 돔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펼쳐지는 넓은 광장은 세속의 분주함에서 벗어난 듯한 정적을 선사한다. 모스크 내부는 무슬림만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외관만으로도 이슬람 건축이 주는 경건한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사실 바탐은 여행객보다 골프 애호가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 정확하게는 골퍼들에게 천국 같은 곳이다. 섬 전체에 6개의 골프장이 있는데 선택의 폭이 넓고 잔디 관리 상태도 뛰어나 많은 골퍼가 이곳을 찾는다. 합리적인 가격 덕에 주말마다 싱가포르와 호주, 심지어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골퍼도 많다. “골프 하러 오셨나요?”라는 입국 심사원의 질문은 이곳에선 제법 익숙한 인사말이다.
| 인도네시아 바탐의 부속섬인 라노에선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바탐 섬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이 작은 섬은 보트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온전한 ‘쉼’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라노섬은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선택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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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바탐의 부속섬인 라노에선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바탐 섬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이 작은 섬은 보트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온전한 ‘쉼’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라노섬은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선택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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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탐은 ‘작은 발리’라고 불린다. 도심은 난개발로 어수선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순수한 자연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섬 특유의 높은 습도와 후텁지근한 공기가 처음에는 무척 낯설다. 그래도 연중 온화한 기후라 여행자의 마음을 금세 편안하게 만든다. 지금처럼 몬순기(12~2월)에는 종종 비가 내려 시원하기까지 하다. 여행하기에 안성맞춤인 시기다.
바탐 부속 섬인 라노에선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바탐 섬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이 작은 섬은 보트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남쪽 항구에서 배에 올라 잔잔한 바다를 가르는 동안 도시에서의 분주함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다. 그렇게 20여 분 후 라노 섬에 발을 내디디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여유가 여행자를 맞는다.
고요한 섬 풍경에 잠시 넋을 놓는다. 가만히 다가가 야자수 아래에 자리 잡고 이 풍경 속으로 들어선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야자수 잎과 파도 소리가 선율을 이루며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달래준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온전한 ‘쉼’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라노 섬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선택이다.
바탐의 현재를 대표하는 번화가인 나고야 타운으로 향한다. 쇼핑몰과 레스토랑, 은행, 호텔 등이 밀집해 있어 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낮에는 쇼핑을 즐기고, 밤에는 화려한 야시장을 탐방하며 나고야 타운의 다양한 즐길거리에 흠뻑 빠질 수 있다.
‘나고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일본의 지명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가이드에게 이유를 묻자 “인도네시아 역시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아픈 역사가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 나고야에서 온 군인들이 이 지역에 자리 잡으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그 지명을 바꾸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그것 또한 역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 바탐의 현재를 대표하는 번화가인 나고야 타운 야시장. 쇼핑몰과 레스토랑, 은행, 호텔 등이 밀집해 있어 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낮에는 쇼핑을 즐기고, 밤에는 화려한 야시장을 탐방하며 나고야 타운의 다양한 즐길거리에 흠뻑 빠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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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탐의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원주민마을 ‘발레발레’. 마을 앞 해변에는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덱이 놓여져 있어 여행객들이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많이 찾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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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마을 발레발레에선 바탐의 과거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야자수와 맹그로브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한적한 어촌 마을. 전통 가옥과 소박한 생활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다. 마을 곳곳을 구경하고 마을 앞바다에 놓인 덱을 따라 걷다 보니 전통춤 공연이 시작됐다. 독특한 리듬에 맞춘 춤사위가 금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0분 남짓한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 함께 춤을 추는 시간도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웃고 손을 맞잡으며 여행객과 주민 간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공연이 끝난 뒤 주민들은 활짝 웃으며 “이브자리까르!”라고 외쳤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가이드가 설명해 줬다. “최고”라는 의미란다. 그들의 밝은 미소와 정겨운 말투는 내게도 ‘최고’로 남은 순간이었다.
바탐에서 보낸 이틀간의 여정. 섬 크기만큼이나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라노 섬에서 느꼈던 고요함과 평온함, 나고야 타운에서의 활기, 그리고 원주민 마을에서의 따뜻한 환대와 그들의 순수함은 하나의 퍼즐처럼 맞물려 마음속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2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 조화로움 속에서 여행의 본질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바탐을 넘어 빈탄으로 향한다. 빈탄은 또 어떤 이야기와 얼굴로 우리를 맞이할까.
◇여행메모
▶가는 길= 제주항공은 지난 10월부터 주 4회 일정(수·목·토·일)으로 신규 취항했다. 이 노선은 제주항공의 첫 번째 정기노선이자 단독 노선이다. 이제 단 6시간 30분이면 바탐 섬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게 됐다.
| 작은 발리로 불리는 ‘투리비치 리조트’ 전경. 해변 바로 앞 작은 섬은 힌두사원 모양의 카페로 꾸몄다. 카페에서 바다로 길게 뻗은 선창이 또 사진 포인트다. 바다 건너 약 15㎞ 떨어진 싱가포르가 신기루처럼 아른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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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발리로 불리는 ‘투리비치 리조트’ 전경. 해변 바로 앞 작은 섬은 힌두사원 모양의 카페로 꾸몄다. 카페에서 바다로 길게 뻗은 선창이 또 사진 포인트다. 바다 건너 약 15㎞ 떨어진 싱가포르가 신기루처럼 아른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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