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동차 예비율, 시대에 맞게 조정해야

by이데일리 기자
2024.04.08 06:30:00

안창규 서울교통공사 차량본부장

[안창규 서울교통공사 차량본부장] 요즘 서울 지하철에서는 신형 전동차 도입이 한창이다. 서울 지하철 1~8호선과 9호선 2·3단계를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보유한 전동차 중 약 77%에 해당하는 2800칸이 첨단 기술을 갖춘 신형 전동차로 교체됐거나, 교체 진행 중이다. 신조차는 품질과 성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유지관리 측면의 효율성도 기존 전동차와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다. 대표적으로 전동차 검사 주기와 검사 난이도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3일에 한 번씩 점검해 왔던 부품이나 장치가 5일 또는 7일 주기로 점검해도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설계돼 전동차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예방 정비를 하는 검사 주기가 길어졌다. 정비의 방법도 달라졌다. 기존에는 눈에 보이는 누기나 누유 개소의 점검 등 닦고 조이는 기계적 정비가 주를 이뤘다면, 신조차는 컴퓨터 장치 등 전자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소자에 대한 점검이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정비 프로세스도 전동차 시스템 전반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도와 전문적 지식을 요하며 변혁의 흐름을 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정비나 점검을 위해 전동차의 운행이 불가능한 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 가용률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전동차 예비율을 낮출 근거가 된다.

전동차 예비율은 보유한 전체 전동차 중 예비 전동차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서울교통공사의 전동차 예비율은 호선별 운행 특성에 따라 상이하지만, 전체 평균은 10% 내에서 관리되고 있다. 철도 강국 일본의 동경메트로와 코레일 등에서는 전동차 검사 주기와 고장 발생률 등을 감안해 13% 수준을 적용한다. 국토교통부는 10%, 한국개발연구원(KDI)는 10~15% 수준으로 전동차 예비율 관리 기준을 권고하는 등 현재 명확히 정립된 기준은 없다. 전동차 예비율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보유 전동차가 많은 노선은 예비 전동차가 적정 편성 수를 초과하여 산출되고, 보유 전동차가 적은 노선은 예비 전동차가 적정 편성수에 못 미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전동차 예비율이 과도하게 높으면 차량기지 내 유치선 추가 건설과 유지보수에 필요한 인력의 증가로 건설비용과 운용비용이 모두 증가한다. 반대로 예비 전동차 대수가 현저히 적으면 사고나 고장 발생 시 비상 상황 대비가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노선별 전동차 특성, 정비 대상 전동차 수, 고장 등에 대비한 전동차 수, 비상대기 전동차 수 등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예비율 산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합리적 수준의 예비율 산정은 최근 서울교통공사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서울교통공사는 2023년(잠정) 기준 누적 적자가 18조 원대에 이르게 되면서 절실한 자구노력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그간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업무를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불필요한 비용이 지출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며, 전동차 예비율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비효율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예비율 수준에 따라 차량구매비와 시설 및 정비인력 운용에 따른 비용이 정해지는데, 가령 8%대로 낮아진다고 하면 차량구매비만 약 2,200억 원이 절감될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호선별 전동차 운용 및 유지보수 특성을 반영한 적정 예비율 산정기준 마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오는 8월 공사에 최적화된 예비율 산정기준이 마련되면 예비로 빼둬야 할 편성이 줄어들어 출퇴근 시간대 지금보다 더 많은 전동차를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이다. 높은 혼잡도로 불편을 겪었을 승객들의 출퇴근길이 더 안전하고 편리해지는 것은 물론, GTX 등 신규 노선의 개통과 연장 노선 등 다양한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경영개선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조차가 대거 도입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전동차 예비율 재정립을 위한 최적의 시기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새로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수시변역(隋時變易) 자세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