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 위주 정책서민금융은 지속 한계…민간이 나서 자금공급 늘려야"[만났습니다]
by서대웅 기자
2023.07.26 06:22:00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장 인터뷰
민간, 담보·보증 요구하며 소극적
리스크 감수해 서민 숨통 터줘야
''서민특화 신용평가모델'' 시범운용
민간도 차용하면 대출 확대 가능할 것
[대담=정수영 금융부장·정리=서대웅 기자] 금융권에선 은행에서 돈 빌리지 못하는 사람을 ‘서민’으로 분류한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회사를 서민금융회사로 일컫는 배경이다. 3금융인 대부업은 서민이 제도 금융권을 이용할 수 있는 최후 보루다. 그런데 서민 기준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부업권의 담보대출 취급 비율이 신용대출 비율을 앞지른 점은 이를 방증한다. 담보물조차 없는 서민들은 대부업체마저 이용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은 제도 금융권에서 밀려나는 서민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이다. 서민금융법 제정에 따라 2016년 출범했다. 정책 서민금융 대출상품에 보증을 대주는 역할을 한다. 은행, 저축은행 등은 이 보증을 담보로 정책대출을 취급한다.
하지만 이재연 서금원장은 2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보증 기반의 정책 서민금융 제도는 지속 가능성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보증 재원이 한정적인 데다 민간 대출시장과 비교하면 그 규모도 미미하다는 것이다. 민간 금융회사가 역할을 분담해 서민금융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게 이 원장 생각이다.
서민금융 공급을 확대하려면 리스크 관리 역량이 충분해야 하지만 2금융권의 능력은 한참 부족한 게 현실이다. 서금원은 그래서 서민특화 신용평가모델을 개발했다. 재무정보와 비재무정보를 절반의 비율로 차주 신용을 평가한다. 지난해 9월 출시한 ‘최저신용자 특례 보증상품’에 시범 운용 중이며, 적용 대상을 올해 확대할 계획이다. 이 원장은 “향후엔 민간 금융회사도 이 모델을 차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이 원장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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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서민금융 공급액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주요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서민금융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서민금융은 대부분 담보와 보증 대출로 공급된다. 담보물이 없거나 신용등급이 낮으면 대출을 못 받는다. 서민층에서도 더 어려운 분들을 지원하기 위해 서금원에서 보증을 선다. 그런데 이 구조가 지속 가능한 것이냐. 상당히 어렵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 보증부 대출이 증가할 텐데 한없이 늘릴 순 없기 때문이다. 민간 서민금융회사가 역할을 해야 한다. 해외에선 중소형 금융회사, 신용협동조합 같은 곳에서 서민들에게 100% 담보가 없는 경우에도 자금공급을 많이 한다.
-민간이 어느 정도를 담당해야 한다고 보나.
△서금원이 지난해 공급한 정책대출이 7조3000억원이다. 상호금융 자산은 신협, 농·수·산림조합, 새마을금고 모두 합치면 약 1000조원, 은행은 4000조원에 다가가고 있다. 정책 서민금융 비중이 그만큼 미미하다. 그런데 상호금융 고객군이나 금리 수준을 보면 은행과 큰 차이가 없다. 은행 영업방식도 획일적이다. 어느 한 업권이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금융권 틀 자체 변화가 있어야 한다. 민간의 서민금융이 지금보다 늘어날 필요는 있다.
-보증 없이 서민금융을 확대하려면 금융회사 건전성이 우선해야 할 것 같은데, 민간에서 그런 역할이 가능하겠나.
△금융회사들이 능력을 키워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해야 한다. 리스크를 회피하려고만 하니 담보대출을 늘리고 보증에 기대는 것이다. 은행은 물론, 상호금융 등 2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2010년대 중반 이러한 고민을 시작했다. 일본 금융청은 리스크를 피하려고만 하는 금융권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민간 금융회사들이 너무 리스크를 떠안지 않아 금융중개 기능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도한 리스크를 지면 문제라고 여기지만, 서민금융에 대해선 리스크를 안을 역량도 키워야 한다.
-리스크 테이킹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새롭다.
△리스크 테이킹을 하면 획일적인 영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은 리스크를 안 지려다 보니 모두 담보대출을 하고 그 결과 금융회사마다 차별성이 없다. 서민금융 차주 기준도 획일화돼 있다. 신용평점이 하위 20% 이하이면서 연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람, 이런 식이다.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 사태가 발생한 이후 신용카드 발급 대상을 신용등급으로 자르고 있는데 이와 같은 것이다.
-민간의 서민금융 확대를 유도하려면 인프라나 인센티브도 필요하지 않나.
△신용평가모델을 고도화하면 민간에서도 충분히 서민금융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런데 민간이 그러한 모델을 만드는 데 소극적이다. 서금원이 지난해 하반기 서민특화 신용평가모델을 개발한 이유다. 재무정보와 비재무정보를 50대 50 비율로 섞은 모델이다. 금융회사들은 보통 차주의 거래 이력 정보로 신용을 평가한다. 우리가 만든 모델은 기존 금융정보 외에도 금융결제원이 보유한 자동이체 내역 등 데이터, 휴대폰 정보와 같은 개인행태 정보, 부채·신용도 개선 정도 등의 대안정보를 반영한다. 재무정보가 취약한 서민의 상환능력을 보다 정교하게 평가하기 위함이다.
-민간에도 도입이 가능한가.
△우선 서금원이 지난해 9월 출시한 ‘최저신용자특례보증’에 시범운영 중이다. 올해 적용 대상을 ‘햇살론카드’ 등 다른 정책상품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잘 안착이 되면 민간에서도 차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이 원장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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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생계비대출 인기가 많은데 ‘씁쓸한 흥행’이라는 지적이 많다.
△상품을 만들 땐 수요가 이렇게까지 많을진 몰랐다. 50만원이라도 필요한 분들이 많다는 게 이번에 확인됐다. 이분들은 대부업도 이용하기 어려운 분들이다. 제도금융권과 불법 사금융 사이에 있는, 일종의 금융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을 확인하고 제도적 지원에 나섰다는 데 의미가 있다. 소액생계비대출은 단순히 금융지원만 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 연체가 있는데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조정 신청을 받은 후 금융지원과 함께 복지연계, 취업연계를 병행한다. 서민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유인책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액생계비대출은 반드시 대면상담을 거쳐야 한다.
-소액생계비대출 금리(연 15.9%)가 높다는 지적도 있는데.
△복지가 아닌 금융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리를 은행과 저축은행 중간 수준인 연 10%로 책정하면 저축은행 (잠재) 고객들이 소액생계비대출을 받으려 할 것이다. 재원은 한정적인데 이 상품이 정말 필요한 서민에게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 저축은행 이용이 가능한 차주는 저축은행에서 대출받으라는 것이다. 대신 대부업보단 낮은 15.9%로 정했다. 소액생계비대출 이용 고객을 보면 약 94%가 제도 금융에서 대출이 불가능하거나 법정 최고금리(연 20%)로 돈을 빌려야 하는 신용평점 하위 10% 이하인 분들이다. 6개월간 성실히 상환하면 연 9.4%까지 금리를 낮춰준다.
-현행 한도(최대 100만원)를 200만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로선 고려하기 쉽지 않다. 연말까지 현 상품을 유지하기 위한 추가 재원 확보가 우선이다. 3월 말 1000억원 재원으로 상품을 출시했는데 2개월 만에 268억원이 소진됐다. 연말 전 재원이 바닥 나 연간 공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에도 이 상품을 통해 사각지대에 있는 서민들을 흡수해야 한다. 아직 200만원으로 한도 확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1960년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학·석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박사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외이사 △예금보험공사 사외이사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 △(현)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