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서 28년 일했는데 '경비·골초'라고 폐암산재 거부…법원 판단은?

by이배운 기자
2023.03.06 07:00:00

폐암 업무상재해 유족급여 행정소송 ‘유가족 승소’
공단 ‘흡연이 주요원인’…법원 ‘원인 중 하나일 뿐’
공단 ‘경비원 위험적어’…법원 ‘유해성은 마찬가지’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28년간 탄광에서 일한 근로자가 폐암으로 사망했지만, 대부분 경비 업무를 맡았고 흡연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업무상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사진=이데일리DB)
6일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사망한 A씨의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가족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1962년부터 1989년까지 장성광업소와 강원탄광에서 근무한 가운데, 갱도에서 6년가량 작업하고 나머지는 모두 경비 업무를 했다. A씨는 탄광 근무를 그만두고 27년 뒤인 2016년 1월에 폐암 진단을 받아 그해 8월 사망했다.

유족은 A씨의 사망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A씨가 대부분의 기간을 갱도 내 먼지와 상관없는 경비원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공단은 이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다.



유족은 재심사를 청구했지만, 재심위는 △A씨가 폐암에 걸릴 때까지 호흡기 계통의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적이 전혀 없는 점 △A씨가 25년간 매일 반갑씩 흡연을 해왔다는 점 △A씨에게 진폐증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갱도 내 유해 물질인 ‘규산’에 따른 진폐증보다는 개인적인 흡연 이력이 폐암을 유발한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유족은 다시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A씨의 탄광 근무 이력과 폐암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해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현재까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규산뿐만 아니라 탄광에서 발생하는 다른 미세먼지, 유해물질도 얼마든지 폐암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며 “탄광 갱도 인근 마을의 주민들까지도 폐암 발병률이 10배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자료를 감안하면 분진 노출량을 고려할 때 경비 업무 기간을 제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법원은 규산 노출이 규폐증(진폐증) 발병 여부와 상관없이 폐암 위험을 높이고, 폐암 잠복기가 평균 26.6년이라는 연구 결과를 인용해 A씨의 업무와 폐암의 관계를 부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법원은 “금연 후 15년이 지나서야 폐암이 발병했다고 폐암 유발 원인에서 흡연을 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공단 측 주장을 물리쳤다.

법원은 또 A씨의 흡연 이력 관련해 “A씨의 업무가 폐암을 일으킨 ‘유일한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짚으면서도 “A씨가 탄광에서 근무한 기간에 비춰볼 때, 담배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 못지않은 상당한 양의 분진을 흡입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폐암을 유발한 하나의 요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