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유통사와 제조사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by강신우 기자
2023.02.07 06:15:00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가 판매수수료를 둘러싸고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까. 작년 말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 햇반 등이 쿠팡에서 사라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금도 협상 중이다.
강의시간에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1등 제조업체와 1등 유통업체가 판매수수료 협상을 하면 누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될 것인가. 수강생 중 제조업체 직원들은 1등 유통업체가, 유통업체 직원들은 1등 제조업체가 각각 유리하다고 답한다. 대다수의 수강생들의 답변은 어떨까. 1등 유통업체가 유리하다고 답했다. 시장의 가치사슬구조상 유통업체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1등 유통업체가 1등 제조업체 보다 힘이 세다는 의미다.
법원의 판단은 어떨까. 대법원의 판단 또한 일반 상식과 다르지 않다. 대법원은 홈플러스가 이런 저런 이유로 농심에게 지불해야 할 대금을 전액지불하지 않고 감액한 사건에서 홈플러스가 농심에 대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가 있다고 판시했다. 홈플러스의 시장점유율이 높고, 소비자들이 주로 원스톱 쇼핑을 하고, 제품 판촉행사 여부와 제품진열 위치 선정에 따라 농심의 매출액이 크게 달라지며, 농심이 자사 제품 판매와 관련해 홈플러스의 대체거래선을 찾기도 쉽지 않은 점을 종합 감안할 때 농심의 협상력이 열위에 있다고 본 것이다. 대형 오프라인 유통사와 대형 식품 제조사가 힘겨루기 할 때 유통사가 협상력에서 우위에 있다는 의미다. 대규모 유통업체에 납품·입점하는 제조업체 대부분이 영세 중소업체라면 말할 필요조차 없다.
지난해 11월23일 발표한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대규모유통업체가 납품·입점업체로부터 받은 판매수수료와 제비용을 합해 상품 판매총액으로 나눈 실질수수료율은 이전에 비하여 다소 낮아졌으나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태별 실질수수료율은 TV홈쇼핑(29.2%), 백화점(19.3%), 대형마트(18.6%), 아울렛·복합쇼핑몰(13.3%), 온라인쇼핑몰(10.3%)의 순서다. 실질수수료가 이전에 비해 다소 낮아진 점은 환영할 만하나, 적정 수수료를 둘러싼 납품·입점업체의 불만은 여전히 높은 게 사실이다.
실질수수료가 거래 당사자 간 협상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가는 사적자치원리의 핵심인 가격 수준에 대해 개입해서도 안 되고 개입할 수도 없다. 거래양태가 워낙 복잡·다양해서 적정 수수료를 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적자치에 의해 수수료율이 결정돼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거래상 우월적 힘에 의해 수수료율이 적정 수준 보다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정당한 대가를 주고받아야 사업할 의욕도 생기고 시장생태계도 건강하게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
과거에는 주로 대규모유통사의 오프라인 갑질이 사회적 이슈였다면 최근에는 거대 플랫폼의 온라인 갑질이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2018년 113조에서 2022년에는 207조로 늘어나 4년 만에 2배 정도 성장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 자료에 의하면 접수된 온라인 플랫폼 분쟁 건수가 2018년에는 17건에 불과했으나 2022년에는 104건으로 6배 증가했다. 작년 뉴욕주정부는 음식 배달앱 수수료가 배달 건당 매출의 30%까지 올라가자 식당에 부과하는 총수수료를 20%로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소수 거대 플랫폼업체와 수많은 음식점 간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소득 양극화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높은 수수료로 인해 돌아갈 몫이 줄어든 온·오프라인 납품·입점업체들이 제품가격을 올릴 경우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가격도 덩달아 올라 갈 수밖에 없다. 수수료 문제는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간 소득분배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호주머니 사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경쟁정책이 추구해야 할 가치인 효율성과 공정성을 위해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할 이유다. 온·오프라인 거대 유통업체와 중소 납품·입점업체의 관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평평하도록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이 꽃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