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여학생' 향한 잘못된 학폭 신고…실형 선고 받은 이유는

by조민정 기자
2023.01.07 09:00:00

A군 "뒷담화 한다"며 같은반 여학생 신고
알고보니 강제추행·폭행 가해자…경찰 신고
검찰 불기소→헌법소원→재수사 끝에 실형
손해배상소송도 패소, 총 4천만원 지급해야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좋아하던 여학생이 자신을 뒷담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학교폭력 신고를 한 남학생이 오히려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4년에 걸쳐 학교와 검찰, 법원, 헌법재판소까지 오가면서 여학생과 남학생 측이 공방을 벌인 결과다. 이유가 뭘까.

(사진=이미지투데이)
2018년 12월 서울 구로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당시 16세 남학생 A군은 같은 반 여학생 B양이 단체카카오톡방에서 자신에 대한 비방과 욕설을 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는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에 “B가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다수의 친구들을 욕하며 인신공격, 사생활 유포 등을 하고 있다”며 사이버 언어폭력으로 신고를 접수했다.

이틀 만에 신고 접수 사실을 알게 된 B양과 그녀의 부모는 다음날 담임교사에게 “사실 사이버 언어폭력 가해자라 아니라 A에게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라고 고백했다. 남학생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은 여학생이 피해 사실을 알리기 꺼려 숨기고 있던 것이다. 관련 규정에 따라 학교 측이 경찰에 해당 사건을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알고 보니 학교폭력 신고를 하기 전, 같은 해 4월에 A군은 농구 게임인 ‘넷볼’ 경기를 하던 중 B양의 어깨를 두드리고 주물러 강제추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5월과 6월엔 하굣길에서 B양을 만나자 “집에 같이 가자”며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는 B양의 가방이나 손목을 잡아끌고 가는 행위를 두 차례한 걸로 파악됐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남부지검이 2019년 4월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이들의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무혐의를 입증 받은 A군은 무고 혐의로 B양을 고소했고, B양은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당시 학폭위는 성추행 사건에 대해 ‘조치 없음’ 처분해 청구를 기각했고, 같은 해 8월 무고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은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A군의 성추행 혐의가 뒤집힌 건 헌법재판소가 B양의 헌법소원 청구를 인용하면서다. 2020년 6월 헌재는 “A군에 대한 불기소 처분은 B양의 평등권과 재판 절차 진술권을 침해한 것으로 이를 취소한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재수사에 돌입한 검찰은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제추행), 폭행 혐의로 A군을 기소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재판장 김동현)은 2021년 7월 A군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어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 40시간도 함께 명령했다.

당시 재판부는 “명확한 거부 의사에도 상당 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피해자를 추행하고 폭행했다”며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예민한 시기에 범행으로 인해 B양은 학교생활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을 하지도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모두 기각하면서 2021년 11월 실형이 확정됐다.

최종적으로 유죄가 인정되면서 B양과 그의 부모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도 모두 B양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1단독 이준구 판사는 지난해 7월 “A군과 부모는 B에게 2500만원을, B의 부모에게 각 75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B양이 불안 및 우울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는 등 지속적으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며 “정신과 치료 등을 이유로 고등학교 3학년 중반 무렵부터 학교를 등교하지 않고 ‘학업 중단 숙려제’ 제도를 이용해 졸업했고 수능시험도 포기했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