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우리말]⑤유모차·주린이…전부 `차별어` 입니다

by김미경 기자
2022.07.12 06:10:00

눈먼 돈, 외눈정치, 절름발이 정책 등
한국 사회 차별 언어·차별적 표현 만연
“교육 단계 학습, 화자들의 의지 필요”

한류 열풍이 ‘한글’로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한국 가요(K팝)를 듣는 것을 넘어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이 늘고 있는 것이다. 고무적인 현실에도 외국어 홍수와 온갖 줄임말, 혐오 표현으로 우리 국어 환경은 몹시 어지럽다. 무슨 뜻인지 모를 외국어의 범람은 세대 갈등을 부추기고 알 권리를 막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말을 얼마나 알고, 잘 쓰고 있을까. 이데일리의 연재 기획 ‘반갑다 우리말’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데일리는 문화체육관광부·㈔국어문화원연합회·세종국어문화원과 함께 외국어 남용 실태를 짚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개선하기 위한 기획 기사를 총 12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경제부총리가 금융 부분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정치권에서 나온 차별적 표현이다. 해당 발언은 이광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0년 7월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다주택 보유자들의 금융실태 확인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기재부가 적극 협조하라는 취지의 발언이었으나, 장애인 비하 표현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해야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절름발이는 ‘한쪽 다리가 짧거나 다치거나 하여 걷거나 뛸 때 몸이 한쪽으로 자꾸 기우뚱거리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장애인 비하 용어가 맞다. 특정 정책에 빗댄 관행적 표현일지라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고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미 삼가야 한다고 권고해왔다. 굳이 정책의 불완전성을 장애에 빗대 표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정치권에서 장애인 및 약자 비하 혐오표현이 나온 게 당시가 처음은 아니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2020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미사일 도발에 벙어리가 돼버렸다”고 발언했다가 장애인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도 2016년 ‘눈 뜬 장님’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정계에 따르면 국회에서 사용된 ‘절름발이’라는 표현 건수만 따져봐도 16대 60건, 17대 40건, 18대 34건, 19대 52건, 20대 38건에 달했다.



‘녹색어머니회’(→녹색학부모회), ‘유모차’(→유아차), ‘벙어리장갑’(→손모아 장갑) 등 한국 사회에서는 차별 언어를 무심코 쓰는 일들이 만연해 있다. 동시에 주식 초보자를 어린이에 빗댄 ‘주린이’(주식+어린이)나 ‘~충’(벌레에 빗대 비꼬는 신조어) ‘허버허버’(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남성을 비하하는 신조어) 같은 혐오성 차별어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경·여류작가 같은 단어는 성차별을, 흑형·살색 등은 인종차별, 결정장애·눈먼 돈·외눈 정치 등은 장애 차별, 멍청도·경상디언은 지역 차별을 담고 있다.

세종국어문화원 관계자는 “차별어란 사회적 약자 또는 특정 대상을 직·간접적으로 부정하고 무시, 경멸하거나 공격하는 단어·구·문장 등의 언어표현을 말한다”며 “의도가 있든 없든 듣는 사람에 따라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차별을 않기 위해서는 차별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학생들 대부분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에 차별과 혐오의 의미가 내재돼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교육단계부터 차별표현에 대한 인식교육이 필요하다는 게 국어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한 정부 차원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다각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차별어를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정책적 노력과 동시에 언어사용의 주체인 대중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국어 전문가들은 “탈북자는 새터민, 혼혈가족은 다문화가정으로 바꿨는데 나중에는 이 말이 또 다른 차별을 재생산하는 용어로 오염되기도 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원래 그 말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 내 언어 감수성이 점점 민감해지고 있는 만큼 내가 하려는 말이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게 아닌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며 “차별 언어를 쓰지 않겠다는 화자들의 의지에 달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