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오른 게 없는 美 물가 충격…스태그플레이션 논쟁 번지나

by김정남 기자
2021.08.06 06:00:00

안 오르는 게 없는 미국 ''인플레이션 충격''
수요 폭발에 호텔비, 항공료 등 가격 폭등
임금, 원자재 등 비용 인상 인플레 우려도
일각서 50년래 스태그플레 오나 갑론을박
빚더미 앉은 미국 당국, 정책 고민 커질듯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 (사진=AFP 제공)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하루 호텔값이 700달러가 넘는다고?”

올해 여름 휴가를 메인주, 뉴햄프셔주, 버몬트주 등 미국 북부에서 보내기로 한 크리스티나(41·여)씨는 최근 숙박 시설을 알아보며 깜짝 놀랐다. 뉴욕에 사는 그는 델타 변이 확산을 감안해 자동차 이동이 가능한 곳을 택했지만, 이 지역마저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씨는 남편과 자녀 두 명 등 4인 가족이 묵을 수 있는 곳을 구했는데, 최고급이 아님에도 하루 700달러를 넘는 곳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당초 비싸봐야 300~400달러를 예상했다. 크리스티나씨는 “더 놀라운 건 하루씩 예약은 불가하고 최소 4일 연속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이마저도 동이 날 정도로 숙박 시설을 찾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미국 내에서, 예컨대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비행기를 통해 이동하려면 델타항공 같은 대형 항공사의 경우(4인 가족 왕복 기준)으로 3000달러는 각오해야 할 정도다. SUV처럼 인기가 많은 중고차의 가격은 신차보다 비싼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공급 부족 탓에 신차는 당장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곧장 살 수 있는 중고차의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중고차를 알아보고 있는 한 뉴저지 주민은 “인기가 많은 차종은 매물 자체가 없다”며 “딜러들 말로는 최소 내년까지는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것 같다고 한다”고 전했다.

미국 내 인플레이션 충격이 커지고 있다. 당국은 이번 인플레가 일시적이라고 하지만,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예상보다 길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경기 지표들이 줄줄이 꺾이면서, 일각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이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4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내 교통서비스 가격은 10.4% 올랐다. 그 중 비행기값은 24.6% 폭등했다. 중고차 가격은 무려 45.2% 뛰었다.



물가 충격이 만성화할 수 있다는 건 근래 델타 변이 역시 한몫했다. 델타 변이로 인해 구인난이 계속 심화하고, 이에 따라 임금 상승이 이어진다는 시나리오 하에서다. BMO 캐피털 마켓츠의 벤 제프리 전략가는 “델타 변이는 많은 미국인들의 일자리 복귀를 늦출 수 있다”며 “노동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임금 인상이 계속될 경우 인플레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만나본 뉴욕과 뉴저지 인근 식당 사장들은 여전히 구인난을 토로하고 있었다. 한 식당 사장은 “실업수당을 받고 있으니 당국에 신고하지 말고 현금으로 급여를 받을 수 없냐는 이들도 더러 있다”며 “정부 보조금이 많아 보니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치폴레, 스타벅스, 맥도널드 같은 초대형 프랜차이즈 역시 임금 인상 압박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와중에 델타 변이로 인해 미국 경기 고점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특히 오는 20~29일 열릴 예정이었던 뉴욕 국제오토쇼가 취소됐다는 소식은 상징성이 있다는 평가다. 뉴욕 오토쇼 취소를 기점으로 각종 대규모 대면 행사가 줄줄이 연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행사와 관련한 호텔업, 식당업, 부대 서비스업, 기자재업 등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뉴욕 오토쇼는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100만명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던 행사다.

월가 일각에서는 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오는 스태그플레이션 논쟁까지 번지고 있다. 마켓워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사이클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미국에서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40~50년간 찾아볼 수 없던 이례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당국의 정책 해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바이든 정부는 천문학적인 인프라 딜을 추진하면서 돈을 풀고 있고, 연방준비제도(Fed)는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 신호를 줬지만 동시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1980년대 초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한 볼커식(式) 해법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을 정도다.

특히 미국이 역대급 빚더미에 앉았다는 점에서 정책 여력은 급격히 줄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 가계부채는 3130억달러(약 359조5000억원) 증가했다. 14년 만의 최대 폭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1일부로 부채 한도를 초과해 디폴트 위기에 처해 있다. 팬데믹 이후 뿌려댄 ‘헬리콥터 머니’ 탓이다. 이때 자칫 돈줄을 조이면 경기 둔화를 넘어 침체로 갈 수 있다는 게 미국 당국의 고민이다.

제프리 전략가는 “연준은 인플레가 끊임없이 높아지는 와중에 고용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정책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돈줄을 조여야 하는데 조일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연준이 인플레 우려에 직면했음에도 정책 경로를 바꾸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