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급등에 돼지열병까지…마이너스 물가시대 막내리나
by김정현 기자
2019.09.18 03:00:00
사우디 원유시설 피격에 아프리카돼지열병 상륙
유가에 돼지고기 값까지 오르면 소비자물가 영향
| 17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돼지고기가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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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예상 밖 악재에 유가와 식품가격이 동시에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시설이 피격에 따라 국제유가가 들썩이는 와중에 아프리카돼지열병까지 한국에 상륙하면서다.
최근 사상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부른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반등하는 재료가 될지 주목된다. 초 저물가에 따라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받는 한국은행도 부담을 일부나마 덜어낼 수 있을 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17일 경제·금융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연평균 10% 상승하는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2%포인트 내외 상승 압력을 받는다. 원유를 둘러싼 중동 악재가 지속되고 유가가 오르는 경우 국내 소비자물가도 상승 압박을 받는다는 뜻이다.
최근까지 국제유가는 물가상승률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지난해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일평균 배럴당 69.7달러 수준이었는데, 올해(1월~9월 평균) 들어 64.1달러 수준을 나타내며 지난해 대비 8.0% 가량 하락한 탓이다.
그러나 앞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중동 불안이 장기화해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속하면 올해는 물론 내년 소비자물가에까지 상승 압력을 줄 수 있다. 한은은 올해와 내년 물가상승률을 각각 0.7%, 1.3%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 원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 국제유가 체감상승률은 유독 높을 수 있다.
다만 사우디 원유시설 피격 사태의 윤곽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은 향후 국제유가 전망을 어렵게 하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사우디 피습 주체나 피해 정도, 복구 시기 등이 아직 확실하게 판단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식품가격 상승 재료도 난데 없이 등장했다. 치사율이 100%에 달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 처음 발생했다. 정부는 ASF 발생 농장 등의 돼지 3950두를 살처분하는 등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ASF가 더 확산하면 살처분되는 돼지가 급증하고 돼지고기와 햄 등 육가공 제품 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1년 1개월 전부터 ASF에 시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최근 3개월 동안 60%가 올랐다.
다만 돼지가격이 크게 오른다고 해도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돼지고기가 전체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비중이 미미해서다. 전체 가중치를 1000으로 했을 때 돼지고기의 가중치는 9.2 정도다. 돼지고기 가격 상승이 만두나 육가공품까지 포함하면 가중치가 소폭 확대되지만 이를 감안해도 비중이 크지 않다.
신유란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사우디 피폭이나 ASF 상륙 등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한 상황이므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는 힘들다”면서도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급등하는 경우 국내 물가상승률도 크게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물가에 상방압력을 줄 수밖에 없다”며 “다만 그 정도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물가가 상승 압력을 받고 최근 ‘디플레이션’ 논쟁이 희석된다면 한은으로서는 안팎의 금리인하 압박을 덜 수 있다. 다만 소비자물가가 예상보다 상승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수요변화에 의해 물가가 상승으로 보기 힘든 만큼, 금리결정의 핵심 변수가 되기는 힘들 전망이다.